[목요시사회] 워커홀릭-'일이냐 사랑이냐'
기사입력 1997년 06월 04일 13시 43분
유럽영화에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제아무리 예술을 찾고 전통을 찾아도 유럽영화보다는 미국영화의 간판 앞에 관객들이 몰려드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문법을 차용하지 않고서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눈치챘다고나 할까.
그동안 유럽영화에서는 좀체로 볼 수 없었던 장르, 로맨틱코미디영화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빔 벤더스나 폴커 쉴렌돌프 등의 엄숙주의로 대변되던 독일에서 로맨틱코미디영화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여간 놀라운 변화가 아니다.
`워커홀릭'(Workaholic)은 이러한 배경의 독일영화다. 장르는 로맨틱코미디.
`일과 사랑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워커홀릭'은 이 명제를 둘러싼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감각적인 터치로 그려냈다. 여류감독 샤론 폰 비터샤임은 감독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를 여성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흥미있게 풀어내는 솜씨를 발휘했다.
비터샤임의 연출에서도 할리우드적인 색깔이 묻어난다. 무엇보다도 드라마가 뚜렷하다. 이미지와 영상에 무게를 두어왔던 과거 유럽영화의 `문법'에서 탈피한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첫장면에서부터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침대는 쉴 새 없이 삐걱거리고, 비음섞인 교성이 화면을 뒤덮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열정적으로 섹스에 탐닉하던 두 남녀의 머리맡에서 전화벨이 울리자 남자는 벌떡 일어나 회사의 일처리에 정신을 집중한다. 섹스는 중단되고, 남자는 회사로 달려나간다.
로다(크리스티안 폴)와 막스(토비아스 모레티)가 남녀 주인공. 워낙 바빠 사랑을 확인할 시간이 부족했던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방송국의 MC자리마저 마다하며 여행을 준비한 로다에게 막스는 회사일로 출장을 가게 됐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떠나버린다.
로다의 홀로서기. 막스를 잊고 다시 방송일에 몰두하던 로다는 떠돌이 예술가 폴(랄프 바우어)을 만나 `대체사랑'에 열중한다. 이 대체사랑이 파격적이다. 한번쯤의 외도로 끝나질 않는다.
섹스중독자인 폴과 로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를 탐한다. 늦은 밤 거리의 분수대에 뛰어들어 대담한 섹스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로맨틱코미디라기 보다는 섹스코미디라는 느낌이 들 만큼 섹스에 관한 묘사가 사실적이고 직접적이다. 신세대 관객을 의식한 듯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다.
특히 천진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여주인공 크리스티안 폴의 대담한 노출연기는 비터샤임 감독의 감성적인 연출과 어우러져 영화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동력이 되고 있다.(6일 피카디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