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메시지] '3승 거둔 날' 이상한 일 연속
기사입력 1997년 06월 03일 15시 09분
지난번 3승째를 거둔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평소에는 없었던 일들이 계속 일어났고 운도 좋은 날이었다.
경기가 있는 하루 전날 이사를 한 것부터가 무리였다.
평소에 시간이 없어 오후 게임이 있던 전날 이사를 결심했다.
다음날 선발로 던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계속 승운이 따라주지 않아 변화를 결심하고 이사를 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 밤 12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내가 살던 매니저 스티브（김철원）형 집에 있는 물건들만 옮기면 된다고 간단히 생각했는데 밴 트럭으로 5번이나 왕복해야 했다.
이사한 집은 온통 이삿짐 박스가 널려 있고 그야말로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은 들었다.
그날은 평소와는 달리 게임 전날인데도 사우나를 가지 못했다.
경기 당일 아침에 일어나니 이삿짐을 날아서인지 야구에서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아팠다.
비록 선발로 등판하는 날이었지만 피로한 근육을 풀기 위해 코리아 타운에 있는 사우나에 갔다.
보통 때는 뜨거운 물에 안들어가는데 그날은 왠지 뜨거운 물로 피곤을 풀고 싶었다.
그리고 한국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항상 늦잠을 자기 때문에 코리아 타운에서 아침을 먹는 것은 미국에 온 이래 처음이었다.
일요일이어서 첫 손님인 내가 칼국수를 시켰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더 먹고 힘내라"며 떡볶이도 해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안하던 일을 계속하게 되더니 게임에서도 이상한 일이 이어졌다.
5회 2루타를 치고 타자가 번트를 대 3루로 뛰었는데 타이밍상 죽는줄 알았다.
순간적으로 슬라이딩을 하느냐 마느냐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슬라이딩을 했고, 다행히 세이프가 됐다.
세이프됐다는 자부심에 폼 잡으면서 일어서 유니폼에 먼지를 터는데 3루심이 신발 자국을 가리키며 너무 일찍 슬라이딩을 했다고 한마디 했다.
나는 5년만에 처음 하는 슬라이딩이라고 응수했다.
투수들은 원래 무릎을 다칠까봐 슬라이딩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자 3루심이 다시 내일 아침부터 연습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계속 농담을 해댔다.
곁에 있던 3루 러너코치 아말피타노 코치가 내일 연습시킬테니 다음 게임때 보자고 응수했다.
심판들과 경기중 그렇게 오래 농담을 해대기는 처음이었다.
어쨌든 이상한 일이 계속 발생한 끝에 3승째를 건졌으니 참 다행이다.
앞으로 선발로 나서는 날에는 떡볶이도 먹고 사우나도 하고 또 안타치고 슬라이딩도 해야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