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34)

기사입력 1997년 06월 03일 15시 09분


다음날 아침. 방호부사 김기천이 청으로 들어섰다.

일본에 다녀온 후로 그는 활기에 차 있었다. 윤의충의 앞에 앉은 그가 기운차게 말했다.

"장군, 왜국에서 받은 은자로 도자기를 가득 샀소이다. 그것이 곧 금으로 바뀌어 질터이니 은으로 금을 버는 것이올시다."

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번에 왜국에 가면 왜선을 서너척 빌려 양곡을 가득 싣고 오겠소이다."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시중대감께서 군선 세척을 더 보내주시기로 했으니 우리도 여섯척이 되오."

"황공하오."

머리를 숙인 김기천의 두눈에 생기가 찼다.

"장군, 전란으로 옥답이 황무지가 되었지만 무역으로 군민(軍民)을 배불리 먹일수가 있소이다. 모두가 장군의 은덕이오."

"시중대감의 뜻이오."

일본에서 실어온 양곡중 쌀 삼백석을 윤의충이 목사에게 보냈던 것이다. 텅 비었던 진주목의 창고가 쌀로 채워지자 목사 안재연은 눈물을 쏟았다.

다음날 부터 목사청의 앞에 쇠솥 두개를 걸어놓고 하루에 한차례씩 죽을 쑤어서 이백명을 먹였다.

윤의충이 김기천을 바라보았다.

"부사, 배별장의 말을 들으니 남송의 선단이 오덕도 앞바다를 지나 왜국으로 간다던데 이곳에는 들르지 않소?"

"전에는 들렀지만 요즘에는 발길을 끊었소이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노예상 이었습지요. 아비가 자식을 팔고 지아비가 아낙을 팔아 금자 몇닢을 받았습니다. 허나 장군께서 오신 후로는 겁이나 왜국으로만 갑니다."

"고려인 중에서 아이를 빼앗고 아녀자를 강탈하여 그놈들에게 넘기는 무리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놈들도 모두 자취를 감췄소이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남송의 선단을 덮칠 것이오."

윤의충이 말하자 김기천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장군, 그러시다면."

"이제 남송의 배는 왜국에 못가오."

"…."

"오덕도에 짐을 풀고 그곳에서 거래를 하는 것이지. 물론 왜국도 마찬가지, 남송으로 갈수는 없소."

한동안 윤의충을 바라보던 김기천이 이윽고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오덕도는 곧 크게 번창해 지겠소이다. 장군, 동서의 선단이 모이고 창고와 객사가 늘어서게 되겠소이다."

"주막이 수도없이 생기고 선단에서 뿌리는 재물이 고려땅에 남게 될 것이오."

"세수(稅收)로 진주목이 풍성하게 되겠습니다."

"양병(養兵)의 구실이 충분하게 될것이오. 오덕도의 방위군으로."

"과연 지장(智將)이시오."

"몽골족들의 흉내를 낸것이지. 그자들은 서역을 정벌하면 통로를 차단하고 교역을 보호하면서 재물을 집결시켰소."

"장군께 신명을 바치겠소이다."

갑자기 두손으로 마루바닥을 짚은 김기천이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소직의 충심을 받아주소서."

"아직도 길이 멀고도 험하외다."

윤의충이 정색을 했다.

"부국양병의 길은 이제 시작이오."

시선을 든 그가 먼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힘의 원천은 시중 김준이다. 그가 뒤를 받쳐 주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