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소산의 몰락 (10)

기사입력 1997년 06월 03일 15시 09분


그동안 허원행을 지원했던 정보제공자는 `청문회 사태' 이후 많이 주춤거렸다.

정보 전달자로 발각되면 살아남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사태는 이기자 분석대로 하늘만이 아는 일이며 `비전21'이 할 일은 정치인의 움직임과 예측기사를 쓰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경쟁이다.

주간조선이나 일요신문 같은 대 선배 시사주간지와의 경쟁이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뒤떨어져서는 안된다.

여러가지로 막막할 때 불쑥 나타난 이종민 여기자의 분석과 예측은 이 잡지의 성격에 너무나 잘 맞아 떨어졌다.

마치 밤중에 보석을 주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취미도 다양하고 머리도 좋아보였다.

"저 맥주 조금 하고요. 뮤지컬 좋아해요. 처음엔 소설도 써보고 싶었는데 재주가 없나봐요. 정치 좋아서 정외과 선택했다가 너무 실망 많이했어요. 하기야 기대를 건 내가 더 잘못이 많지만요."

"그래요? 뭐가 이기자를 그렇게 실망시켰죠."

"여기가 아프리카 인가요? 우리나라가 미개발 국가냐구요. 어떻게 대통령 아들이 정치권을 헤집고 다녀요? 또 거기 동조하고 날뛰는 사람들은 뭐구요."

"결국 소산은 붕괴되겠지."

"붕괴되죠. 청와대가 임기 잘 끝내기 위해서라도 소산왕국은 붕괴 돼야 합니다. 그대신… 아마 야당도 그만한 타격은 받을 겁니다. 대통령 스타일이 그러니까요."

"스타일이라니."

"박태준, 정주영, 선거 끝나고 다 당했잖아요."

"이기자 야당편인가?"

"야당요? 차라리 그러면 좋게요. 여야 모두 똑같으니 한심하죠."

"허허허… 그럼 절망이란 뜻인가."

"글쎄요. …사장님. 참 소장님. 맥주 한잔 안 사주실래요? 전 돈이 없거든요."

"그래? 얼마든지 사주지. 그대신 오늘 나한테 많은 얘기 해줘야 돼."

"정치 얘기라면 시집 안가고 밤잠 안자고 몇년이라도 해드리죠."

허원행과 여기자는 커피숍에서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무렵.

별로 할 일이 많지 않은 장혜정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배운 것이 없으니 기사를 쓸 수도 없고 편집일도 하지 못한다.

유명인사 만날때 수행비서처럼 따라 다니기는 했지만 `청문회 사태' 이후 그일도 뜸해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허원행이 그녀의 가슴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자신과 한소장을 위해 몸까지 내둘렀는데도 요즈음 전혀 찾는 기색이 없다.

돈은 충분히 받았지만 이제 돈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여자가 되었다.

"제길, 도대체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그녀는 이 토요일 허원행을 찾기위해 편집국을 찾아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