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소산의 몰락 (9)

기사입력 1997년 06월 02일 14시 34분



여기까지 말하던 국장이 갑자기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약속이 있고 일어날 시간이 된 것이다.

"이기자, 나 약속이 있어 먼저 일어나니까 불 끄고, 문 잠그고 퇴근해. 월요일 미팅 때 다시 얘기하자구."

상의를 걸치며 밖으로 나갔다.

이기자가 책상을 정리할 때서야 허원행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흠. 이제 퇴근하나?"

"앗！"

비명소리가 귀를 찢었다. 마음놓고 있던 이기자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누구세요. 당신."

"놀랄거 없어. 나 발행인 허원행이야."

"네?"

말로만 들었던 허소장이다. 그가 마치 유령처럼 불쑥 구석에서 나타났다.

"미안해. 말 엿들어서."

"그건 괜찮은데 정말 사장님이세요?"

"소장이라고 불러. 그게 편하니까."

"굉장히 젊으시네요."

"그래? 젊어서 미안해. 허허허…. 자. 퇴근하는 길인가."

"네… 사장… 아니 소장님."

"앉지."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허원행은 이 당돌하고 야무진 기자에게 대단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만일 경비가 찾아와 인사하지 않았다면 이기자는 끝까지 경계의 고삐를 놓지 않았을 것이다.





















































"사장님. 저 배고파요. 저녁 사주세요."

"저녁? 그러지. 마침 나도 시장한 참이니까."

회사 앞 한식당에서 배를 채운 후 허원행은 이 여기자를 호텔 한적한 커피숍으로 데려갔다. 좀 더 얘기를 나눌 작정이었다.

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정치공부에 뜻이 있어 국회의원 비서로 잠깐 일했지만 비서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비젼21'에 취직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이종민이에요. 비서실보다 발로 뛰는 게 생리에 맞는 거 같아 취직했어요. 처음엔 문화 쪽을 맡으라고 해서 일했는데 1주일도 안돼 정치부로 보내달라고 졸랐죠."

"아까 재미있는 말 많이 하던데."

"죄송해요."

"아냐. 난 이기자 같은 사람이 필요해."

"감사합니다."

"분석력이 대단히 뛰어나던데? 대권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그거야… 사실 하늘밖에 모르는 일 아닙니까. 다만 지난 과거를 분석하면 미래가 쬐끔 보인다는 것 뿐이죠.

노태우, 전두환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때 대통령께서 선거자금 훌훌 털었다면 지금 많이 편하실 겁니다."





































































"대통령이 선거자금 밝힐까."

"못합니다.너무 늦었죠. 게다가 두 전직 대통령을 비자금 문제로 투옥시켰는데 어떻게 말합니까. 아마 자료가 없어 할 말이 없다고 할 겁니다."

허원행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