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의나고야통신] '베테랑'칭호받는 40대 청춘들
기사입력 1997년 05월 29일 14시 51분
내나이도 만 34살이니 야구선수로는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이다.
일본에서는 미국식으로 나이를 세기 때문에 같은 해에 태어났더라도 생일이 아직 안지났으면 33살이라고 한다.
주니치 투수가운데 내가 제일 고참이고, 전체에서도 60년생인 가와마타, 62년생인 아이코에 이어 3번째다.
나는 요즘 나이먹은 선수들의 자기관리 모습을 보면서 `역시 프로답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선수수명이 길뿐만 아니라 노장선수들이 투수는 에이스로, 타자는 간판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나이를 먹었어도 잘한다'라는 뜻으로 나이에 액센트가 있는 노장이라는 말을 쓰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철저히 베테랑, 즉 `연륜이 풍부하기 때문에 잘한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용어를 쓴다.
주니치에서도 최근 베테랑 `대타 삼총사'의 활약이 대단하다.
가와마타, 아이코, 히코노（33）는 찬스 때마다 한방씩 터뜨리는 해결사들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 프로야구 전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베테랑 선수는 센트럴리그 히로시마의 좌완 에이스 오노 유타카（42）와 퍼시픽리그 니혼햄의 4번타자 오치아이 히로미쓰（44）다.
올시즌이 21년째인 오노는 선발→마무리→선발로 보직을 변경하면서 작년까지 671경기에서 136승（92패） 138세이브를 기록했다.
마무리투수로 나선 지난 91년 14연속경기 세이브로 일본 신기록을 세운 오노는 지난 27일까지 5승을 따내 일본 프로야구 최고령 최다승 기록을 47년만에 바꿔 놓았다.
프로 19년째인 오치아이는 28일 일본 프로야구 사상 2번째로 1천안타를 달성했다.
오치아이의 1천안타는 18년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이런 기록은 시즌 성적도 좋아야 하지만 선수 생명이 길어야 세울 수 있다.
42세의 에이스와 44세의 4번타자.
40대 청춘인 이들의 활약은 일본에서도 삶에 지친 40대 샐러리맨들에게 활력소가 된다고 들었다.
한국의 현역선수가운데는 LG의 （김）용수형과 삼성 （이）만수형, 쌍방울 （한）대화형이 대표적인 베테랑들일 것이다.
얼마전 은퇴경기를 치렀다는 （박）철순이형도 생각난다.
나는 지난 겨울 피나는 훈련을 했다.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아직 힘이 있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희망이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올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도 겨울철 체력훈련을 철저히 했기에 가능했다.
요즘은 몇년 더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겠다는 의욕이 자꾸 생긴다.
`노장'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선수생활은 신진급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함께 야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나이를 뛰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도 40대의 에이스와 간판타자가 나와 진정한 베테랑의 의미를 야구선수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심어줄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