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소산의 몰락 (4)
기사입력 1997년 05월 28일 13시 49분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지난 연말의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의 불길이 꺼지는가 싶더니 뒤이어 한보사태가 터졌다.
몇몇 정치거물을 투옥시켜 수습되어가나 싶더니 김현철이 다시 핵폭탄으로 등장해 버렸다.
대통령은 정국전환을 위한 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날치기통과의 실질적 책임을 물어 이홍구 대표를 경질하기로 작정했다. 최형우 고문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 이룬 정권인데…."
평생을 대통령 따라다니며 이리 터지고 저리 얻어맞고, 가족들은 생계 꾸려 가기에도 급급했고, 변절자 소리 들어가며 3당 합당에 합류했고 이제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권후보 반열에 겨우 들어섰는데….
겨우 얻은 것은 `민주계 대권 불가'뿐이다.
나이 어린 김현철이 정계와 관계 재계를 휘젓고 다녀도 대통령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좋다. 당 대표는 양보 못한다."
당 대표. 그 프리미엄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민주계를 결속시키자. 민주계에서 대통령이 못나오면 우리 힘으로 차기 대권후보를 탄생 시키자.'
그러기 위해서는 당 대표를 맡아야한다.
생각하면 혀라도 물고 죽고싶은 심정이지만 도도히 흐르는 물결을 거역하지는 못했다.
대통령은 처음 `당 대표는 이한동'이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회창 고문은 `당 대표로 갈 사람은 대권후보를 포기하라'면서 압박했고 최형우 고문은 당 대표를 자신이 맡겠다며 강력히 밀어 붙였다.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대권에 조차 나설수 없는 최고문의 요구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좋다. 당 대표를 주겠다. 그러나 발표 때까지는 목숨을 걸고 비밀에 부쳐라.'
민노총과 극렬한 대결을 벌여가며 총력전을 펼쳤던 이홍구 당 대표는 눈물을 머금고 사퇴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대권의 길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고,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계의 거목이며 김영삼 정권의 1등공신 최형우 고문은 과로로 쓰러지게 되었다.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최형우 쓰러지다！' 이 소식은 김현철로 발생된 여론 악화와 경제침체로 등돌린 민심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민주계를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게 만들었다. 허원행이 긴급 참모회의를 열었다.
"대통령 스타일로 보아 다음 대표는 이회창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네? 그렇게 안보는데요. 이 고문은 언젠가 대통령과 대판 싸우고 결별하지 않았습니까."
"이 난국을 돌파할 인물은 이 고문 밖에 없어."
"그럼 이고문은 대권후보에서 사퇴해야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