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 '송가황조' 치마폭에 감춰진 中근대사
기사입력 1997년 05월 28일 13시 49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 여기에다 홍콩과 대만, 또 동남아 일부 국가의 화교까지 포함된 중국어권은 단일규모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때문에 중국의 역사는 곧 세계사의 한 페이지로 인식돼왔다. 이중에서도 격랑의 근대사는 곧잘 영화의 소재로 등장, `마지막 황제'나 `아편전쟁' `남경대학살'과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송가황조' 역시 중국 근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던 손문과 장개석 부인들인 송가 자매들의 실화를 토대로 한 서사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역사영화의 틀보다는 송가 자매들의 사랑과 인생에 무게를 둔 휴머니즘영화의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하지만 올초 베를린영화제에서 오프닝필름으로 선보이는 `송가황조'는 오는 7월의 홍콩의 중국반환 등과 맞물려 세계적인 관심집중의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최근 등소평의 사망으로 중국의 현대사가 또한번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예측되는 시점이어서 `송가황조'의 화제성은 날로 증폭되어가고 있다.
`송가황조'의 세 자매. 돈을 사랑한 큰딸 애령(양자경)과 중국을 사랑한 둘째딸 경령(장만옥), 권력을 사랑한 셋째딸 미령(오군매).
부호와 결혼한 애령은 앞서가는 경제감각으로 중국의 경제력을 장악하고 경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족과 주위의 모든 것을 버리며, 미령은 뛰어난 미모와 탁월한 재능으로 야심가를 선택한다.
영화에서는 세명의 자매중 둘째와 셋째인 경령과 미령의 대비되는 삶에 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27년이나 연상인 아버지(강문)의 친구 손문(조문선)과 결혼해 그의 철저한 신봉자가 되는 경령과 새로운 영웅 장개석(오흥국)의 후처가 되어 중국 정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가로서 남자 못지 않은 배짱과 야심으로 국제정치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미령.
그러나 막강한 재력과 권세를 휘두르던 송가황조는 격변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거듭한다. 신중국건설을 도모하며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았던 손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중국은 혼란에 빠지고, 손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장개석은 경령과 이념의 차이로 갈등을 빚는다.
경령과 미령 자매의 우애에도 금이 간다.
서안사변중 감금된 장개석의 구출을 위해 국공합작으로 잠깐 경령과 미령이 손을 잡았을 뿐, 내전이 끝난 후 세 자매는 서로의 상처와 사랑을 가슴에 묻어둔 채 각자의 길을 떠나고 만다.
영화는 중국 근대사를 관통하고 있지만 난세를 헤쳐나가는 세 자매의 불꽃같은 `삶'이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가을날의 동화'로 잘 알려진 여류감독 장완정의 섬세한 연출이 여기에 힘을 더해준다.
3개의 중국을 대표하는 듯한 세 자매, 양자경 장만옥 오군매 등 톱스타들의 50여년에 걸친 열연도 인상적이며, 올리버 스톤의 `하늘과 땅'으로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수상한 일본 음악가 기타로의 영화음악도 아름답다.(31일 서울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