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임] '우리 가락이 역시 최고야'

기사입력 1997년 05월 27일 15시 56분


75년 여름. 서울 무교동. 오전 10시. 새내기 국악인 김영임은 어느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숍은 의외로 한적했다.
'어, 시간을 잘못알았나?'
"영임씨 여깁니다."
들뜬 사내의 목소리. 구석엔 코미디언 이상해가 보였다. 김영임은 본능적으로 주춤했다.
"아니, 연예인들 모임이 있다더니. 사람들이 별로 안보이네요."
"일단 앉기나 하세요. 뭘루 드시겠습니까?"
'아차!속았구나.'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한무, 이상해의 공동제작품-덫에 걸린 거다. 연예인 모임은 당초 있지도 않았다.
"코미디언 한무씨가 늘상'한창째 제값받고 시집가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끝은 언제나 '이상해가 괜찮은데'라는 운으로 끝나요. 하도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만났지요. 그런데 이상해라는 사람, 참 이상해요. 글쎄 딱 한번 만났는데, 불쑥 '결혼하자'고 어득어득 조르는 거예요."
'결혼하자'는 건 서론에 불과했다. 이후 이상해는 '거머리 작전'을 구사했다.
"말도 마세요. 당시 이상해씨 집이 옥인동이고, 우리집이 장위동인데 집앞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밤11시가 됐건, 12시가 됐건, 눈이 오건 비가 오건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때는 통행금지까지 있었어요 이러기를 2년여."
그러나 김영임의 집에선 '이상해 불가론'이 팽배했다. '나이가 많다' '돈도 없다' '동생들이 우글대는 집의 장남이다'등이 이유였다.
"우선 내 자신이 '코미디언'하면 무슨 외계인 같았어요. 거기다 이상해씨는 나보다 나이도 여덟살 위인데 당시엔 '팍 삭은 아저씨'로만 보이는 거예요. 특히 큰언니는 '고생길이 훤하다, 얘 미쳤니? 그런 사람하고 결혼하게?"라며 길길이 뛰었지요."
78년 크리스마스 이브. 김영임은 이상해의 집으로 납치(?)된다.
뭔가 '뼈대'가 느껴졌다.
"이상해씨는 이북 개천이 고향이예요. 이상해씨는 어머니는 물론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있었어요. 순간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일었고, '이상해는 포커꾼이고, 돈도 없는 날건달이다'라는 그동안 주위의 귀띔도 음해성 루머(?)였다는 판다이 서요."
이후 둘은 정신없이 만난다. 김영임 스물여덟, 이상해(본명 崔永根) 서른여섯. 둘은 결혼한다.
결혼직후부터 이상해는 팔자가 바뀐다. '희한한 세상' '코미디 세상만사'등 코미디 프로에 겹치기 출연한다. 어느새 유명코미디언.
'억조창생 만민시주님에/이내 말씀 들어 보소/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국악인 김영임(金英姙 42). 최근 '회심곡'을 타이틀로 한 음반을 냈다. '가야지' '어화너' '탑돌이' 등 국악창장곡도 포함돼 있다.
"이번 '회심곡'은 종전과는 다르다. 큰북 범종을 삽입, 애절함이 더하다. 음반표지는 나의 삭발한 모습을 실었다. '회심곡'에 대한 애착을 표출하고 싶었던 거다."
김영임. 국악 대중화에 몸을 던진지 20여년. 그동안 동아시아국제예술제 남북합동공연을 비롯, 미국 소련 일본 등지 교포위문공연을 발이 시리게 다녔다.
95년.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공연, 현지 언론의 극찬을 얻어낸다. KBS국악대상도 받는다. 현재 동국대 예술대학원재학중.
김영임. 성루 태생. 2난3년중 막내. 국악예고 재학중 온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열여섯의 김영임만 덜렁 남는다.
미국엔 우리국악이 없기 때문. 청량리의 '정지영 국악학원'에 다닌다. 고전무용과 민요에 빠진다. 학원 수강 1년 6개월만에 원생들을 가르친다. 실질적인 학원 운영자 이기도 했다. 열여덟이었다.
이어 정득만에게서 소리를, 이창배에게는 국악이론을 사사한다.
정득만은 정지영의 아버지로 선소리 산타령의 달인. 이창배는 경기 서도 소리학자였다.
"좋은 선생을 만난 건 천운이었다. 오전 공부가 끝나도 밤늦게까지 장구도 치고 소리 연습에 빠졌다. 이때 명창 박동진 선생이 정득만 선생과 바둑을 두던게 엊그제 처럼 선하다."
사사 3개월만에 'KBS연말 명인명창대회'에 나간다. '방아타령' '양산도'를 불러 호평을 따낸다. 이때 국악협회 명인명창상도 받아낸다. 사사 기간은 2년. '회심곡'음반을 낸다. 이창배가 가사정리를 했다.
얼마후 MBC TV'내 강산 우리노래'에 고정출연한다. 이를 본 작곡가 박춘석이 김영임을 픽업, 김영임을 '국악 대중화의 기수'로 만들겠다는 거였다.
박춘석과 손잡고 낸게 음반 '회심가'. 50여만장이 팔렸다. 스물두살이었다.
"'사랑방 소리'인 경기민요에 발이 빠졌다. 그러나 생계가 막막했다. 미국의 오빠들은 '소리'에서 손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차라리 굶어 죽지."
95년 음반 '아리랑'을 낸다. 한국=아리랑. 그 이미지로 인해 더욱 가슴이 뜨거웠다.
"국악이 진실로 대중과 호흡하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