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속담대로 아는길을 물어가면
기사입력 1997년 05월 27일 15시 18분
필자의 옆집에는 9순을 눈 앞에 둔 할아버지가 한분 사시는데 나와 TV뉴스를 보다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필자 "나랏님이요 쓴 눈물을 삼키며 현철세자를 뒤주 아니 옥에 가두는 걸로 이제 오만 시름 다 잊나 했더니 이번에는 용상에 오를 때 백성들을 상대로 쓴 쩐(錢)이 얼마나 되는지 밝히라고 옥죄어 오고 있는거예요."
할아버지 "산 넘어 산이로고…."
필자 "법어를 하십니까?"
할아버지 "아, 넘어졌는데 쇠똥에 코를 박은 것이며 여우 피했더니 호랑이 나타난 꼴이여！"
아흔 다 되신 노인들도 TV시청을 한다거나, 그 분의 `하수상하다는 시국판단'이 딱 옳다는 얘기이거나, 필자에게 이렇게 나이 많은 친구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노인들의 특징은 사안이 복잡한 내용일수록 한두마디의 속담이나 격언같은 것으로 요약을 하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반대로 젊은 아해들은 속담같은 걸 잘 인용 하지 않는다. 대신 `니힐리즘'이니 `델리케이트'따위의 외래어로 말의 앞뒤를 즐겨 수식한다.
아해들이 속담 격언같은 걸 쓰지 않는 것은 그 것의 허구때문이라나. 속담 제정(?) 당시는 어땠는지 몰라도 세월이 흘러 분석, 고찰해 봤더니 많은 모순투성이가 발견되더라는 것이다.
어떤 속담의 어디가 잘못이라는 건지 2회에 걸쳐 대변한다.(필자도 아직 아해인지 상당부분 동감이다.)
1. 아는 길도 물어가라.
-아는 길 앞에서 길 가는 사람을 물면 개로 오해를 산다. `물어'가 `질문'을 뜻하는 것이어도 그렇다.
이런 통계가 있었다. 지나 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더니 어설피 아는 것까지 대답하느라 고의가 아닐지라도 무려 36%가 잘못 가르쳐 줬다.
하물며 모르는 길도 아닌데 왜 묻는가? 상대의 심중을 꿰뚫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라도 만나면 `야이 쉐이야！ 아는 길을 왜 묻구 X랄이냐?'
`누구 인내심 테스트 하냐?！'며 멱살을 잡힐 수도 있다.
아는 길은 그냥 잠자코 가는 게 낫다.
2. 공든 탑이 무너지랴.
-옛날에 만들어진 탑엔 애시당초 축구공, 농구공, 골프공 등 공(球)이 들어 있지 않다. 어쨌든 세워진 모든 것은 무너지는데….
내일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