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눈깜빡임 20만번으로 남긴 책
기사입력 1997년 05월 25일 16시 49분
프랑스의 `엘르'지 편집장이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지난 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3주후 의식을 회복하지만 전신마비라는 선고를 받는다. 육신에 남아 있는 기능은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릴 수 있다는 것 하나.
불행중 다행일까. 그는 그 불행을 다행으로 만들었다.
그는 그 왼쪽눈의 깜박거림마저 멈추고 세상을 뜰 때까지 마지막 글쓰기를 시도했다.
언어장애치료사인 클로드 망디빌을 만나 눈꺼풀을 20여 만번이나 깜박거리면서 받아쓰기를 하게 해 한권의 책을 펴낸 것이다.
망디발은 큰 판에다 알파벳을 적어놓고 가리켰다. 보비는 그 알파벳이 맞으면 눈꺼풀을 한 번, 아니면 두 번 깜박거리는 것으로 대필작업을 했다.
이러한 고통스런 작업은 1년3개월이나 계속됐다.
최근 출간된 `잠수복과 나비'(동문선)는 이런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명잡지의 편집장이며 자상한 아버지였던 보비는 이 책을 통해 짧았던 지난날들을 눈물겨우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군데군데 벌레먹은 커튼이 우유빛으로 뿌옇게 밝아오는 걸 보니 새벽이 오는 모양이다. 발뒤꿈치가 아프다. 머리는 망치로 맞은 듯하고, 온몸은 잠수복이라도 입은 듯 갑갑하게 조여온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부정과 아름다웠던 지난달을 추억한다.
행간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주변사람들에 대한 일화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책은 지난 3월 9일 출간됐고 사흘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갑갑한 잠수복 같던 육신을 떠나 나비가 되어. 44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