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열흘 붉은 꽃은 없다 (12)
기사입력 1997년 05월 20일 14시 13분
킹콩은 무엇보다도 암곰들에게 환심을 사는 게 급해 전혀 싸울 생각이 없었다.
더구나 싸움을 하다 패트롤카에 걸리는 날이면 혼찌검이 난다는 사실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싸움의 주도권은 시커먼스가 쥐고 있었다.
시커먼스는 뒤에서 달려들어 목덜미 부위를 물었다.
그러나 킹콩에게는 큰 충격을 주지 못하는 공격이었다.
시커먼스는 킹콩에 비해 키가 워낙 작아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목덜미에 미치지 못했을 뿐아니라 다른 곰보다 긴 킹콩의 털이 에어백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비로소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챈 킹콩도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패트롤카에 시달리고 독방생활을 했어도 싸움이라면 전주에서 한가닥하던 킹콩이 아닌가.
일단 기세를 잡은 시커먼스는 또다시 킹콩의 앞가슴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같은 스타일의 연이은 공격은 `선수'끼리의 싸움치고는 너무 안이한 것이었다.
이번만은 치명상을 입히겠다며 공격을 서두른 시커먼스의 과욕이기도 했다.
시커먼스의 이빨에 닿은 것은 킹콩의 앞가슴이 아닌 주먹이었다.
몸무게가 잔뜩 실린 핵펀치가 아니라는 사실이 시커먼스에게는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방을 맞은 시커먼스의 투지도 만만치 않았다.
상대가 가볍게 친 것을 모르는 시커먼스는 킹콩의 주먹이 덩치에 비해 별게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가 한방을 때리고도 2번째 공격을 하지 않으니 시커먼스는 더욱 사기가 높아졌다.
협객(俠客)이 아닌 깡패 시커먼스는 킹콩이 싸움에 적극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욱 기고만장했다.
킹콩으로서는 가소롭기까지 했다.
시커먼스는 두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발톱의 날카로움과 주먹의 무게가 곁들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정도 공격은 조무래기들에게나 통하는 유치한 것이었다.
킹콩은 시커먼스의 하는 짓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특유의 핵펀치를 날렸다.
마음먹고 날린 주먹인 만큼 시커먼스는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시커먼스는 그 한방으로 사실상 정신을 잃었으나 이미 공격의 탄력을 받은 킹콩은 시커먼스를 올라탄 채 사정없이 주먹을 꽂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