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21)

기사입력 1997년 05월 20일 14시 05분


비단주머니에 든 것은 길이가 한치밖에 안되는 금부처 상이었다. 그러나 눈썹과 입술, 손가락 마디까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서 마치 부처는 살아 웃는것 처럼 보였다.

윤의충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부처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숙사의 내실 안이다. 무장들은 모두 진으로 돌아갔고, 해시가 지난 무렵이어서 주위는 짙은 정적에 덮여있었다.

그날 귀석골에 가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는 바위 뒤에 서서 김영을 내려다 보았었다.

바람소리에 놀란 말이 뛰며 울었고, 무릎에 얼굴을 묻은 김영도 울었던것을 다 보고 들었다.

횃불을 든 김충이 하인들과 함께 찾으러 오지를 않았다면 김영 앞에 나섰을지 그것은 자신도 알수가 없다. 그녀는 곧 이재만과 혼인을 할것이다.

후벽장군이 된 이재만은 그의 아비인 상장군 이도영과 함께 김시중의 든든한 우군이자 그녀의 보호자가 된다.

감정에 치우쳐서 대사(大事)를 그르칠수는 없다. 윤의충은 다시 부처를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

김준의 밀지에는 강화섬 내의 상황이 짧게 적혀져 있었다. 왕은 기대원을 중심으로 친몽세력을 확장시키는 중이었다.

무장들은 아직 동요하지 않았으나 언제 음모가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천같은 무리가 하나 둘이 아닐것이다. 두천은 서경의 병마부사로 옮겨졌는데, 거느릴 병졸도 없는 이름뿐인 직함이었다.

녹봉도 지급이 안될터이니 얼마나 견딜지 알수없었다.

"방호사 어른, 주무십니까?"

방밖의 목소리에 윤의충이 머리를 들었다.

"누구냐?"

"강화섬에서 사람이 왔사와."

문을 열어 젖히자 수직하던 군사가 머리를 숙였다. 그의 뒤에 서있는 사내는 박오돌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납작 땅바닥에 엎드렸는데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방호사 어른, 박오돌이 문안이오."

"네가 웬일이냐?"

"사흘 밤낮을 뛰어 왔사옵니다."

"어서 들어오너라."

방으로 들어선 박오돌이 무릎을 꿇었다.

"존안을 뵈오니 기쁘기가 한이 없소이다."

그는 야적시절부터 발과 입이 빨랐다.

"그래, 만척이는 잘 있느냐?"

"예, 장군께 안부 전하라고 신신당부 하셨소이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송합장군의 전갈을 갖고 왔소이다. 밀지는 잊어버린다고 입으로 전하라고 하셨지요."

"…."

"진주목의 부사 신송준이 보낸 밀사가 섬의 나룻터에서 대감의 위사께 잡혔습니다. 밀사는 왕께 보내는 밀서를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

"송합장군께서는 방호사께 그것만 전해 드리라고 하셨소이다. 그러면 방호사께서 알아서 하실것이라고."

"수고했다."

"그리고 소인을 당분간 방호사 어른께 맡긴다고 하셨소이다. 추밀원부사댁을 나온 후로 대감댁 마방밖을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습지요."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잘되었다. 객사에서 쉬어라."

박오돌이 나가자 그는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신송준은 목의 부사이니 정4품으로 무관인 자신과 동급이다.

왕과 내통하고 있는 자는 그 하나뿐이 아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