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마음의 벽 허문 형님같은 '인술'
기사입력 1997년 05월 19일 14시 16분
프로축구에 정식 주치의（醫）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축구의 현실은 지금까지 `팀 닥터＝마사지사'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왔다.
선진 외국팀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축구팀 주치의 제도가 한국에서는 아직 개념 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부상을 했을 경우 기본적인 응급처치만 가능할 뿐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이런 가운데 부천 유공이 프로축구단 가운데 처음으로 올해부터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유공의 목동 홈경기때 마다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서울 노원구 노원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이경태 과장（36）이 바로 한국 프로축구 1호 주치의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족부정형학을 미국에서 전공했고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하고 있는 주목받는 전문의다.
강 철 서정원 이임생 등 축구선수들뿐 아니라 발레리나 등 발이 생명인 유명인들 가운데 그를 거쳐가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
이처럼 권위있고 근엄할 것 같은 이경태 박사가 요즘 팀내에서는 신세대 감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운동장이건 숙소건 시간나는 대로 자신을 보조하고 있는 물리치료사들에게 친절하게 의술을 전해주는가 하면 선수들과 격의없는 농담으로 서로의 벽을 허물고 있는 것.
선수들과 물리치료사들 사이에서는 "정말 의사가 맞느냐?"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올 정도다.
그의 이같은 `벽 허물기'는 생활속에도 철저히 배어있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주치의, 보건소 무료강의, 대학 출강 등의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영화 음악 등 취미생활로 가입한 서클만도 서너가지나 된다.
때론 하얀 가운을 입고 그라운드를 달리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동료의사들로부터 "무엇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는 핀잔도 받지만 이경태 박사는 "의사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병에 걸린다"며 빙그레 웃어 넘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