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여러가지 변형주
기사입력 1997년 05월 19일 14시 16분
술을 그냥 못 마시고 갖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시는 우리의 음주습관은 아마도 선배님들한테서 배운 모양이다.
일제 때의 국어학자며 사학자셨던 권덕규 선생은 술로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래시곤 했는데 버는 돈이 변변찮으니 가재도구를 팔아야 했으며 나중에는 한채 남은 집까지 팔아야 했다.
대취한 권덕규선생, 이젠 남에게 넘어간 집을 보고 외치길 "네 이놈！ 이제껏 내가 네 안에서 살았지만 오늘부턴 네가 내 안에서 살아야 한다！"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권덕규 선생은 그 길로 돌아와 그 동안 마신 여러 술과 마지막 이별주를 마셨는데 그 이름이 `청산주'여서 지금도 `酒史'에 전한다.
지난 회에 이어 각종 변형주들을 알아보자.
*금테주-`누군 금테 둘렀는지 비싼 술 마시고…'등등의 한탄을 하는 흑싸리 쭉정이들이 주로 마신다. 맥주 잔에 맥주를 채운 뒤 냅킨을 덮고 그 위에 양주를 병아리 눈물 만큼 따른다. 고급술이 스며 들기를 기다렸다가 냅킨을 걷어 내면 맥주가 마치 금테를 두른양 보인다. 속은 아닌 `도금주'.
*다이아몬드주-김중배가 아니더라도 다이아몬드를 얻을 수 있다. 소주잔 안에 작은 얼음 토막을 넣으면 불빛에 다이아몬드 같기도 하다.
*태풍주-맥주잔에 맥주와 양주를 배합해 섞은 뒤 손바닥으로 덮어 마구 뒤흔든다. 태풍이 이는 바다처럼 하얀 거품이 인다.
*세차주-맥주병 입구를 막고 마구 흔들다가 손을 조금 열면 세차할 때의 샤워기처럼 술이 분출한다. 이 때 얼굴에 뿜어댄다.
*드라큘라주-비교적 적은 돈으로 서양귀신인 드라큘라를 만날 수 있다. 맥주잔 바닥을 양주나 싼 소주로 깐다. 그 위에 붉은 포도주를 가득 덮으면 진한 색깔로 변하면서 독한 소주나 위스키처럼 변한다. 입가에 붉은 술을 흘려가며 마시는 사람이 제대로 마시는 것이다.
*충성주-군인이나 조직원들이 주로 마시는 술이다.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걸치고 그 위에 양주잔을 올린다. 머리를 탁자에 사정없이 부딪치면 양주잔이 톡∼하고 맥주잔으로 가라 앉는다. 맥주에 잠긴 양주잔까지 오드득 오드득 씹어 마신다.
*민생주-양주를 낱개피 담배식으로 낱잔으로 한잔만 산다.
그 양주를 탁자 위에 놓고 맥주잔을 덮는다. 빠르게 맥주잔을 부딪쳐서 뒤집으면 튀는 양주의 파편 일부가 맥주잔에 남는다. 이 맥주잔에 맥주를 부어 마시면 약하게나마 양주맛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