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열흘 붉은 꽃은 없다 (9)
기사입력 1997년 05월 16일 14시 08분
패트롤카에 받힌 킹콩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서 그처럼 힘이 센 괴물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날나리아를 정신없이 때리느라 패트롤카의 존재를 깜빡 잊었던 킹콩은 저만큼 나가떨어진 뒤 한동안 멍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주먹과 이빨 공격에 끄덕도 하지 않던 괴물은 힘마저 대단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패트롤카는 킹콩을 깔아뭉갤 듯이 밀어닥쳤다.
킹콩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본능적으로 전날 도망쳤던 아파트로 통하는 문을 찾았으나 쇠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패트롤카는 일부러 엔진소리를 크게 내며 킹콩을 추격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들이받을 수 있겠지만 단지 겁만 주기 위한 추격이어서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했다.
이같은 사정을 알 리 없는 킹콩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다.
킹콩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날나리아와 최고봉, 루이스 등 암곰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넋을 잃었다.
특히 킹콩에게 폭행을 당한 날나리아는 고소한 표정으로 킹콩의 수난을 지켜봤다.
얼마나 뛰었을까, 이윽고 철문이 열렸다.
킹콩은 숨을 헐떡이며 아파트로 들어섰다.
그러나 킹콩의 본격적인 수난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며칠 동안 패트롤카에 고생한 킹콩은 목련이 활짝 핀 어느 봄날 드디어 사파리에 데뷔했다.
여느 때처럼 다른 곰들이 모두 출근한 뒤 간이방사장에 나간 킹콩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간이방사장의 아파트 반대편으로 난 문이 열리는 게 아닌가.
패트롤카가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아 그쪽으로 나가라는 것 같았다.
패트롤카에 밀려 100@ 남짓한 통로를 걷자 커다란 문이 나왔다.
그러나 그 문도 조금 뒤 드르륵 열렸다.
문 밖으로 나가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엄청나게 넓은 땅에 아파트에 있던 곰들이 모두 있는 게 아닌가.
사파리 구경을 처음 한 킹콩은 무작정 상경해 서울역 앞에 선 소년처럼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다행히 낯익은 얼굴들이 몇몇 보였다.
자신이 1대4로 맞붙어 흠씬 패줬던 조무래기들과 눈이 돌 만큼 예쁜 암곰들이었다.
`그렇다면 옆방에 있던 놈도 있을텐데.'
킹콩은 본능적으로 맘모스를 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