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체프] '불신의 손'된 '신의 손'
기사입력 1997년 05월 14일 15시 29분
`신（神）의 손'에서 `불신（不信）의 손'으로.
프로축구 천안 일화의 `신의 손' 사리체프（37． GK． 러시아） 에게는 요즘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올들어 새롭게 구성된 코칭스태프로부터 별반 신임을 얻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는 데다 어쩌다 게임에 나서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골문이 뻥뻥 뚫리는 통에 영 죽을 맛이다.
물론 실점이야 GK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지만 그의 마음은 더없이 무겁다.
사리체프가 누구인가.
그를 빼놓고는 한국 프로축구 15년사가 얘기가 안될 정도의 신（神）적인 존재 아니던가.
적어도 프로축구의 용병 역사와 GK 역사는 그로 인해 시작됐고, 또 그로 인해 숱한 일화가 만들어졌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잔뜩 웅크린 채 맥을 못추고 있다.
그가 키우다시피 한 박동우는 작년말 유공으로 떠났고, 남아 있던 김해운마저 왼손 엄지손가락 골절로 깁스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좀처럼 골문을 지킬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대체 요원이 없어지자 코칭스태프에서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이던 전 유공 소속의 차상광을 불러들여 덥석 골문을 맡겨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92년 프로축구 데뷔 이후 0점대 실점률을 유지하며 `신의 손'이란 애칭을 얻었던 그가 어느새 천더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천하의 사리체프도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다.
일화의 리그 3연패에 결정적으로 공헌, `실질적인 MVP'로 평가받았던 `신의 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진리일까, 감독의 편견 탓일까.
안타깝게도 `신의 손'은 조금씩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