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 야구세상] '아메리칸드림' 두 한국인
기사입력 1997년 05월 14일 15시 29분
박찬호를 보는 국민들의 눈이 뜨겁다.
애지중지 귀하게 키운 아들을 이국땅에 보내고 지켜보는 어머니의 절절한 심정이다.
그가 나오는 선전은 보기만 해도 기쁘고 그가 조금만 희망적인 빛나는 플레이만 해도 온 국민이 까무라칠 정도다.
그는 사랑받는 아들이자 우리 한국이 공들여 키운 남자이다.
인터넷 최고의 누드 모델로 최근 한국에 온 이승희를 보는 눈은 조금 다르다.
이승희를 둘러싼 우리들의 반응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이중적인 가를 보여준다.
일단 이승희는 아름답다.
박찬호의 플레이 못지않게 화보를 통해 본 그녀의 몸은 탄탄하고 당당하다.
모든것이 커야 되는 서구 여성위주에서 미니글래머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우리나라에도 이승희팬이 얼마나 많은 지는 이번 공항의 아우성으로 여실히 증명됐다.
세살때 이민을 가서 부모의 이혼 등을 겪은 이승희는 훌륭한 여성으로 성장했다.
오하이오의과대학에 다니다가 누드모델로 진입을 한 것이 오늘의 이승희를 있게 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승희는 훌륭한 전문직 여성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옷을 벗어 이름떨친 여자를 반기기를 너무도 꺼려한다.
도대체 일개 누드모델이 한명 왔다고 해서 왜 이 난리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뭐 그리 자랑스럽냐고 하는 비아냥, 그리고 개탄과 한탄이 가득하다.
그런데 나는 박찬호와 이승희가 똑같이 자랑스럽다.
아니 이승희가 더 자랑스럽다.
그 둘은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최고의 상업무대에서 성공했다.
야구야말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스포츠이고（그래서 한때 공산국가에서는 야구경기가 금지됐었다）,이승희의 무대가 되는 쇼비즈니스 세계도 역시 그렇다.
두 젊은이는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몸 그리고 정신력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동시에 큰 돈도 벌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백인의 독무대에서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이룬 점에서 나는 그들에게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참으로 훌륭하다.
이승희가 더 대단한지도 모른다.
그녀는 고국인 한국으로부터 단지 핏줄을 받았을 뿐 격려도 사랑도 없이 미국에서 자라났다.
그렇지만 한국인 국적과 패스포트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그녀는 어느 스포츠선수 못지않게 몸관리를 하며 식사를 조절한다.
그녀는 박찬호 못지않은, 아니 더 철저한 프로직업인이다.
그러나 이승희를 보는 우리의 이중적인 굴레, 다시말해 속으로는 좋으면서, 궁금하면서, 감탄하면서 겉으로는 도덕군자연 하는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나는 암담해진다.
프로를 `포로'로 대접하는 나라, 일급사기꾼도 아닌 삼류사기꾼이 떠든 정의니 윤리니 하는 싸구려 위선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