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15)

기사입력 1997년 05월 14일 15시 29분



임연이 승냥이 목소리로 소리쳤다. 두눈을 치켜뜬 모습이 목소리와 닮았다. 그의 앞에 선 교위는 볼이 찢겨 피를 흘리고 있다.

"그래 배 한척을 모조리 빼앗겼단 말이냐?"

임연이 발을 구르며 소리치자 교위는 머리를 숙였다.

"저쪽은 십여명이 넘는데다 우부승선의 휘하였소이다. 당할수가 없었소이다."

"내, 이놈을."

임연이 이를 갈았다.

강화섬의 임연 사저에는 일순 긴장감이 덮여졌다.

김준의 아들 김애가 강화섬에 들어오는 세곡선 한척을 강탈해간 것이다.

자세히 말하면 동경의 유수 이시순이 교정도감으로 보낸 소 다섯마리를 김애가 가로챈 것이었다.

이시순은 임연과 막역한 사이였는데 임연에게 보내는 선물을 도감으로 보낸다고 표를 해왔다.

그렇게 하는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않기 때문이다.

"대감, 고정하시지요."

문득 마당 한쪽에서 누군가가 말하더니 하인들을 헤치고 무장 하나가 다가왔다.

이번에 중랑장으로 승급한 두천이다. 그가 임연의 앞에와 섰다.

"대감, 우부승선은 대감 앞으로 가는 짐인지 몰랐을 것이외다. 소직이 가서 되찾아 오겠소이다."

임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수염 끝이 떨리고 있다.

"중랑장이 말인가?"

"예. 맡겨 주십시오. 한식경이면 돌아올수 있소이다."

"그렇다면."

임연이 보료에 등을 기댔다.

"어디 맡겨 보기로 하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지만 상대가 김준의 아들이다. 그는 믿음직한 시선으로 두천을 바라보았다.

"그 망나니 한테 단단히 일러두게. 내가 아버님과 함께 역사(力事)를 한 사람이라고."

최씨정권의 마지막 지도자 최의를 친것을 말하는 것이다. 김준을 아비로 부르고 있지만 동지이기도 하다.

두천이 말을 달려 우부승선의 사저에 들어선것은 그로부터 반식경도 안되었다.

김애의 사저는 강화섬에서는 제일이다. 김준이 한번 와 보고는 불같이 화를 내고 당장 허물라고 했을 정도로 호화로웠다.

전국에서 가져온 기석(奇石)과 나무로 정원을 장식했고 연못과 정자도 있다. 모두 김준의 후처이자 김애 모친이 뒤를 받쳐준 때문이다.

대청에 앉아있던 김애는 두천을 보자 눈을 크게 떴다.

"중랑장이 왠일이오?"

"인사차 들렀소이다."

두천이 웃음띤 얼굴로 그의 앞쪽에 앉았다.

"우부승선댁은 언제 보아도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이다."

"고맙소."

김애가 먼 시선으로 두천을 바라보았다.

"혹 추밀원부사 댁에서 오시는 길이 아니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자 김애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부사께서 소 다섯마리를 찾아오라고 하십디까?"

"아니, 그런 말씀은."

"유수가 부사께 보낸 짐이라는것을 나중에야 알았소. 오신김에 가져가시오."

"아니올시다."

두천이 손을 저었다.

"부사께선 그러실줄 알고 저를 보내신거외다. 불편하게 생각지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허어, 이런."

혀를 찬 김애가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이런 결례가 있나. 과연 부사께선 그릇이 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