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열흘 붉은 꽃은 없다 (7)
기사입력 1997년 05월 14일 15시 29분
낮에 패트롤카에 시달린 킹콩은 저녁 무렵 맘모스가 퇴근하고 들어와서 시끄럽게 굴어도 대꾸조차 하기 싫었다.
덩치 큰 맘모스보다 깨물어봤자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 놈이 문제였다.
아직까지 범퍼를 물었던 입 전체가 욱신욱신 아팠다.
전주에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강적이 나타난 것이다.
맘모스도 킹콩이 덤비지 않자 흥미가 없는지 곧 잠이 들었다.
또다시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킹콩의 방문은 다른 곰들이 모두 나간 뒤에야 열렸다.
킹콩은 방 밖으로 나가는 것도 싫었다.
나가봐야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놈이 괴롭힐 게 뻔했기 때문이다.
킹콩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걸음으로 나갔다.
한데 웬일인가.
간이방사장에는 암곰 4마리가 노니는 게 아닌가.
아직 발정기는 아니지만 암곰 특유의 냄새는 봄바람을 타고 킹콩의 온몸을 자극했다.
더구나 날나리아와 미시, 루이스, 최고봉 등 에버랜드에서 손꼽히는 미녀들인 만큼 전주에서 올라온 젊은 수곰으로서는 글자 그대로 눈이 빙빙 돌 지경이었다.
킹콩은 암곰들을 보자마자 걸음걸이부터 달라졌다.
목을 뻗뻗하게 세우고 다리에 힘을 잔뜩 준 채 뒤뚱뒤뚱 걸었다.
암곰에게 호감을 주기 위한 수곰 특유의 자세였다.
그러나 킹콩에게 눈길을 주는 암곰은 없었다.
아직까지 발정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곰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암곰들의 반응이야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미녀들을 그냥 놔둘 킹콩이 아니었다.
킹콩은 날나리아를 찍었다.
당시 사파리의 왕 맘모스의 애첩 날나리아는 킹콩이 보기에도 예뻤던 것이다.
사파리에서 가장 수곰을 밝히는 날나리아지만 처음 보는 킹콩에게는 쌀쌀맞게 대했다.
발정기가 되지 않은 탓이다.
날나리아 주위를 돌던 킹콩은 탐색전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바싹 붙어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나름대로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