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야구보기] '방망이 의혹'해법은 스포츠정신
기사입력 1997년 05월 12일 14시 18분
골프를 좋아하지만 거리가 나지 않아 고민이 많은 한 선배는 새로운 소재의 골프채가 나오면 언제나 새 것으로 바꾼다.
단단해 보이는 체격으로는 장타를 칠 것같은데 드라이브 샷이 많이 나가야 160m 정도다.
그가 거리에 욕심을 내는 것은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있겠지만 거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쉽게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만일 기존 배트보다 1m라도 더 나가는 특수 방망이를 가지고 있다면 공포의 타격을 할 수 있다.
홈런은 물론, 장타가 많이 나오고 특히 타구의 스피드가 빨라져 수비하기가 어려워지는 플러스 알파의 효과까지 계산하면 공격이 그만큼 수월해질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LG가 지난 5일 "삼성 방망이가 압축배트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해 프로야구판은 온통 부정방망이 소동으로 시끌벅적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직접 문제의 방망이를 일본 미즈노사로 가져가 각종 검사를 거쳐 부정배트가 아님을 확인함으로써 일단락됐지만 그래도 부정배트의 여운은 아직 남아 있다.
사실 부정방망이는 미국에서도 수없이 만들어졌고 일본에서는 지난 65년부터 압축배트 사용금지가 발표된 81년까지 16년동안이나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부정방망이는 ▲원상태로 두지 않고 약품 등으로 압축시켜 밀도와 경도를 높인 방망이 ▲중심의 내부를 깎아낸 뒤 공기를 빼내고 마개로 막은 진공배트 ▲내부에 코르크나 수은, 오일 또는 철심을 박아 반발력을 늘린 배트 ▲파라핀이나 왁스를 발라 비거리를 늘린 방망이가 그 유형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부정 방망이 논란이 가장 심했던 것은 지난 61년이었다.
3할6푼1리의 타율과 최다안타로 타격 2관왕에 오른 디트로이트의 노먼 캐시가 "나는 부정방망이를 사용했다"고 고백했기 때문.
그러나 큰 후유증없이 다음 시즌을 맞은 미국에서 부정방망이 시비는 종종 있었다.
지난 83년의 부정배트 시비도 유명한 사건.
캔자스시티의 조지 블래트가 홈런을 때리자, 방망이 중심에 송진가루를 묻힌 것은 `송진가루가 손잡이로부터 12인치 이상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무시한 부정방망이라며 뉴욕 양키즈의 빌리 마틴감독이 항의, 홈런이 무효로 됐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커미셔너가 다시 홈런으로 인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볼티모어의 크리스 세이버는 자신의 방망이가 파울이 되면서 부러져 볼보이가 갖다준 배트로 쳤는데 이 방망이 역시 부러지면서 배트중심에 코르크를 박은 것으로 나타나 3경기 출전 정지의 벌을 받기도 했다.
작년에는 시애틀의 로드리게스가 볼티모어의 데비 존슨감독의 부정방망이 항의에 따라 방망이를 심판에게 빼앗긴 뒤, 팀동료 캔 그리피의 방망이를 빌려 홈런을 때려내 의혹을 씻어냈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부정방망이 의혹이 있을 경우에는 경기중에도 주심에게 항의하는데 주심은 그 때마다 그 방망이를 압수하고 있다.
81년 이후 압축배트 사용을 금지시킨 일본에서는 거의 잡음이 없다.
한국에서는 지난 82년 해태 김봉연, 89년 빙그레（김영덕감독）, 90년 LG（백인천감독）, 93년 LG（이광환감독） 등이 부정방망이 시비를 벌였으나 뚜렷한 결론없이 넘어갔다.
아직 찜찜하지만 이번 부정방망이 시비도 일단락됐다.
KBO가 부정방망이가 아니라는 판정을 내림으로써 공인 마크가 없는 방망이도 쓸 수 있게 돼 각종 방망이들이 난립하게 됐다.
`도깨비 방망이' 출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밀한 만원권 위조지폐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간단한 공인마크 정도는 악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포츠맨십을 지킬 때가 된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