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기] 이승희의 '나의꿈 나의삶' (15)
기사입력 1997년 05월 11일 16시 11분
올해는 나에게 행운의 해다. `스타트가 좋아！' 나는 중얼거린다.
할리우드 영화 `프리폴(Free Fall)'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고, 3－4월 독일어판 `플레이 보이' 표지 모델이 됐다. 한국에서 자서전과 누드집도 나왔다. 한국 영화 `해당화'에도 캐스팅됐다.
영화 `트리폴'의 리아는 아주 강한 여자다.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연인으로 접근하는 여자 킬러다.
영화는 10월에 크랭크 인 할 예정이다. 타이틀 `프리폴'이 스카이 다이빙에서 따온 용어인 만큼 직접 스카이 다이빙 장면도 촬영할 것이다.
올해는 또 `마운틴 듀' `브루트' `카멜' 등의 광고 모델도 됐다.
지난 2월 중순부터 미국 전역에 방송되기 시작한 광고가 있다. `마운틴 듀' 광고다. 화려한 카메라 워크와 과감한 화면 구도. 탁 트인 공간에서 짧은 머리에 도전적인 눈빛의 여가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얼터너티브 뉴록을 노래한다.
파란 하늘, 밝은 햇살, 낙타색 코트의 그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카메라 프레임 안에 그녀의 매력적인 저음 위로 전형적인 캘리포니아의 겨울이 빛난다.
여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4명. 백인 둘, 흑인 하나, 그리고 동양인 하나.
그들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컬러와 흑백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흑백의 화면 속에 도시를 가로 지르며 포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 스카이 다이빙, 롤러블레이드, 거칠게 달리고 줄에 매달려 공중을 나는 그녀들. 힘이 느껴진다.
맨 왼쪽의 여자가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주먹을 꽉 쥔 채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들이 밀고 고함을 지른다. 금방이라도 브라운관을 뚫고 튀어나올 듯한 과격한 모습.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 속에 그녀의 모습은 뚜렷하지 않다.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얼굴. 화면에 바짝 다가가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는 얼굴. 검은 머리, 찢어진 눈매, 광대뼈.
그렇다. 그녀는 동양인이다. 네명의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못생겨 보이는 그녀. 그건 바로 나다.
나, 스물일곱살, 인터넷의 여왕, 한국인, 이승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