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클리닉] 생명 이상으로 소중한 성기능
기사입력 1997년 05월 11일 15시 24분
인간에게 있어 성행위는 얼마만큼 중요한 일일까.
흔히 밥만 먹고 못산다는 말도 있지만 어쩌면 모든 게 풍요로운 요즘에는 생명 다음으로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겨울이었다.
40대 초반의 남자가 진찰실 문을 힘없이 밀고 들어왔다.
첫눈에도 중환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큼 초췌해 보였다.
그 남자는 1년전 위암 수술을 받았으나 또다시 재발해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이 우리 병원에는 왜 왔을까?'
이같은 의문은 곧 풀렸다.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라도 건강할 때처럼 성관계를 가져보고 죽는 게 소원입니다."
순간 오싹한 마음이 들었다.
흔히 섹스관광이다, 보신관광이다 하여 나라 망신을 시키는 `섹스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렇게 처절할 만큼 절실한 성적 욕망도 있을까.
몇달 뒤면 죽는다는 사형선고를 받아놓은 암환자가 어떻게 성행위를 생각할 수 있을까.
성행위는 인생에 있어서 이처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며 검사를 시작했다.
오랜 투병 기간을 거치면서 항암제 등 각종 치료제를 복용하고 주사한 탓에 모든 기관이 몹시 쇠약해 있었다.
특히 성기능은 이미 황폐화돼 있었다.
여러 가지 테스트 끝에 단독 요법으로는 만족할 만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짓고 약물요법과 진공요법을 쓰기로 했다.
치료 효과는 다행히 나타났다.
성생활이 가능하게 됐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확인한 그 남자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은 뒤 병원을 떠났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짓궂은 장난일까.
아니면 종족번성에 대한 본능이 그만큼 강렬한 것일까.
나는 환자가 원하는 만큼 치료 효과를 내주고도 한동안 시름에 젖어야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