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야구] '오로지 야구뿐' 외로운 박찬호
기사입력 1997년 05월 09일 15시 24분
박찬호는 외롭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최강의 투수진을 자랑하는 ＬＡ 다저스의 당당한 선발투수로 스물넷의 나이에 `코리아 특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전도양양한 젊은이 박찬호가 외롭다니 무슨 말인가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박찬호는 외롭다.
인생의 절정기인 20대 중반의 박찬호에게는 오로지 야구뿐이다.
다저스에는 물론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단 한명뿐인 한국인 선수 박찬호는 특별히 친한 동료도 없다.
그를 시기하는 동료들은 열손가락으로 꼽아야 할만큼 많고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동료들도 있다.
활달한 성격의 박찬호는 겉으로 보면 적도 없고 항상 인기를 몰고 다니는 스타가 분명하지만 경기에서 패하고 야구가 지겨워질 때면 터놓고 이야기할 동료가 사실 없다.
마이너리그 시절 야구를 포기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슬럼프에 빠졌던 원인도 사실은 외로움이었다.
마치 남의 집에 끌려와서 억지로 적응을 요구당하는 떠돌이 들개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고 본인은 표현하기도 했다.
다른 24살 청년들처럼 어울려 술도 마시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춤도 추러 가고 싶지만 우선 시간이 없다.
저녁 경기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자정이 넘기 일쑤고 오전 늦게까지 잠을 청하고 나서 점심 식사를 하면 구장으로 가야 한다.
혹시 여유가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수도 없다.
`스타'의 꼬리표가 붙어 있어 술집 같은데라도 기웃거렸다가 무슨 소문이 날지 겁부터 나기 때문이다.
며칠전 2승째를 거둔 뒤 모처럼 기자들과 저녁 식사라도 하자고 했더니 헬스클럽에 운동을 하러 가야한단다. 운동이 끝나고 에이전트 김철원씨, 기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박찬호의 노래 솜씨가 많이 늘어 언제 노래를 배웠느냐고 했더니 원정 때마다 워크맨 이어폰을 꽂고 한국 노래들을 계속 듣다보니 노래를 많이 알게됐단다.
그의 호텔방에는 항상 워크맨과 소형 스피커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고, 한창 유행한다는 한국의 노래들이 계속 흘러나온다.
여가 시간을 즐긴다는 것이 그 정도인 것이다.
박찬호는 뼈저린 외로움도 메이저리그의 큰 투수가 된다는 목표로 꾹꾹 눌러버린다.
그런 박찬호에게 고국의 팬들과 동포 팬들의 성원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그의 외로움을 다 상쇄시키지는 못하겠지만 팬들의 사랑을 먹으면서 박찬호는 오늘도 다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외로운 박찬호의 화이팅에 다시 한번 박수 갈채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