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열흘 붉은 꽃은 없다 (3)
기사입력 1997년 05월 09일 15시 24분
전주에서 올라와 중앙무대의 모든 권력을 움켜쥔 곰보살은 하루가 지나는 게 아깝다는 듯 왕권을 누리느라 바쁘게 돌아다녔다.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곰보살은 암곰, 먹거리, 놀이시설 등에서 최고 수준을 향유하며 꿈 같은 세월을 보냈다.
전왕 맘모스가 장수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할 만큼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곰보살도 연임에 실패하고, 이듬해 맘모스에게 다시 왕권을 내주고 말았다.
풀린 뒷다리로는 왕위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 93년 봄이 됐다.
아직까지는 꽃샘추위가 황량한 먼지바람에 묻어 계곡을 누비던 어느날이었다.
동물아파트 앞에 화물차가 묵직하게 멈췄다.
사육사들은 호기심 섞인 눈으로 모여들었다.
이미 새로 올 식구에 대해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철장이 열리며 희한하게 생긴 곰이 나타났다.
덩치는 남산만하고, 색깔은 누런색에 가까웠다.
분명 불곰이지만 `노랑머리'를 하고 있으니 정말 소문대로 별종이었다.
이름은 `킹콩'.
이름에서 풍기듯 사파리에서 가장 큰 맘모스보다 훨씬 컸다.
몸무게는 무려 370㎏.
당장 사파리에 풀어놔도 맘모스와 곰보살을 압도할 덩치였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킹콩의 출신지가 바로 곰보살과 같은 전주였다.
과연 킹콩은 고향 선배인 곰보살을 도와 같은 편이 될 것인지, 아니면 안면 몰수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왕권에 도전할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킹콩은 방을 배정받았다.
바로 맘모스 옆방이었다.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언제까지나 사파리 왕으로 군림할 맘모스를 견제하기 위해 스카우트한 킹콩인 만큼 처음부터 긴장감을 돋우기 위한 방 배치였다.
퇴근을 하고 아파트에 돌아온 맘모스는 깜짝 놀랐다.
태어나서 자기보다 큰 곰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놀라기는 킹콩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기보다 조금 작기는 하지만 열살을 먹을 때까지 그만한 곰을 보지 못한 것이다.
맘모스와 킹콩은 상대방의 기를 죽이기 위해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덩치를 최대한 크게 보이기 위한 곰 특유의 수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