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야구세상] '보통사람'정경배의 위대한 승리
기사입력 1997년 05월 07일 14시 44분
점점 세상살기가 어렵다.
세상이 운동 경기의 생리를 뒤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랭크라는 경제학자의 지적이다.
이 경제학자는 오로지 단 한명, 최고의 톱스타만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갖는 스포츠계나 연예계처럼 모든 사회 구조가 `이긴자 만세'로 가고 있어 생기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2등이니 그저 그렇고, 그런 이들은 없으니만 못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회사들도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우수한 `최고경영자（대개는 악명 높은 사람들이다）'의 월급은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직 상승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경영주들이 보통 직원들을 고용하는데 있어서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이 심각한 불황 중에 몸값（월급）을 단돈 몇 만원이라도 `바겐세일'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어찌 스포츠와 연예계에 비유할까.
치열한 경쟁 사회를 한 순간의 승패가 모든 것을 가늠하는 이 사회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도 살아 남을 수도 없는 사회다.
게다가 언제나 수요보다 공급이 넘친다.
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선택되는 사람은 극소수인 사회다.
그래서 그 최종적인 승자인 소수는 악바리거나 한에 받친 이들이 대부분이다.
또 그래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마침내 그들은 승리했으나 한 맺히고 불안해서 이긴자다운 여유를 보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독식'만을 꿈꾸고 카메라 초점이 자신에게 맞춰지기만을 바라며 `나홀로 플레이'에만 주력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 정경배는 우리의 희망이었다.
열심히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중간치기'들에게 말이다.
조금만 어떻게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역시' 되지 않은 경험을 했던 바로 우리들에게 그렇다.
그는 프로야구 16년사에 빛나는 신화를 만들었다.
그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그저 그런 선수'였다.
7억원, 혹은 1억 3천만원하는 별들에 가려 있던 `평범한 5천만원짜리' 선수였다.
그런데 그가 해낸 것이다.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 홈런'은 `최고가 모조리 쓸어가는 삭막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꿈을 주었다.
열심히 건강하게 살면 어느 날, 내로라하는 최고들이 꿈꾸지 못하는 `진짜'를 중간치기들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겸손히 말한다.
"앞으로도 팀플레이에 빛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정상적으로 `중간 과정'을 거친 선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점잖음이다.
정경배의 플레이가 더욱 빛나는 것은 `모든 역사는 보통 사람이 만든다'는 진실을 `기 죽은 보통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