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바둑 복기 아르바이트 큰인기
기사입력 1997년 05월 04일 14시 26분
`복기맨'은 바둑판 위의 홍길동이다.
조훈현도 되고 이창호도 되고, 중국의 마효춘이 됐다가 일본의 고바야시가 되기도 한다.
복기맨이란 남이 둔 바둑을 손으로 재현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우리나라에만 있다.
바둑케이블TV(채널46)의 `해외특선바둑'이나 `바둑TV초대석' 등을 보면 대국자의 손만 바둑판 위로 왔다갔다 한다.
바로 기보 한장 달랑 들고 프로기사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내는 복기맨들의 손이다.
얼굴없는 복기맨은 그러나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바둑대학생들의 자리싸움이 치열한 신종 아르바이트.
한판당 2시간 촬영에 복기 손맞추기 1시간, 출퇴근2시간 등 거의 하루를 투자해 2만8천여원밖에 못받아도, 복기 공부에 프로의 현장 해설까지 곁들여 배울 수 있어 인기 직종(?)이다.
지난해말 복기맨으로 뽑힌 서강대 박정제씨(경영2년)와 오현석씨(신방2년)는 1주 3회 정도의 복기맨 활동에 기력이 크게 늘었다고 자랑했다.
이들은 대학생 바둑대회에서 단체준우승을 차지한 서강대 기우회의 주역들이다. 공인 기력은 둘 다 아마4단이다.
복기맨은 손이 얼굴이다. 소매가 단정해야 하기 때문에 녹화때는 반드시 와이셔츠를 입는다. 흑백의 바둑돌처럼 색깔을 서로 맞춰입는 것은 기본.
손 치장도 중요하다. 예전엔 한달에 한번도 깎지 않던 손톱을 지금은 1주에 2번이고 3번이고 손톱 때가 안보일 때까지 깎아야 한다.
박정제씨는 복기맨도 전문직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엔 해설자가 앞장면을 설명하기도 전에 다음 수를 마구 두어 해설자를 골탕먹인 적도 있지만, 지금은 눈빛만 맞춰도 호흡이 척척이다. 계가하다 손이 꼬여 돌을 떨어뜨리는 창피는 더 이상 없다.
프로기사의 기풍연구에도 관심을 쏟는다.
장고파 조치훈9단의 역을 맡으면 진짜로 뜸들이듯 돌을 놓고, 서능욱9단은 바둑판위에 구멍을 뚫듯 힘차게 내려친다는 것쯤은 파악해야 복기맨으로 장수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