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수첩] 동숭아트센터 '나 김수임'
기사입력 1997년 05월 04일 14시 26분
동숭아트센터(대표 김옥랑)가 제작한 여간첩 김수임의 삶과 사랑을 그린 연극 `나, 김수임'(정복근 작, 한태숙 연출)에 관객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이 무대에는 연일 극장안을 꽉 메운 관객들에게 `연극다운 연극'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연극계의 불황이라고 말하는 요즘 이 무대에 왜 관객들이 몰릴까?
우선 제작자인 동숭아트센터의 기획 능력이다. 지난해 `어머니'를 공연, 빅 히트한 동숭아트센터는 자신감을 얻어 이번에 이 무대를 올렸다.
충분한 제작비를 투여하고, 자료조사에서부터 마케팅까지 과학적인 전략을 세우고, 개성있는 스태프와 연기파 배우들로 연기진을 구성, 앙상블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극작가 정복근과 연출가 한태숙의 콤비다.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첼로' `덕혜옹주' 등의 무대에서 작가, 연출가로 만나면서 쌓인 연극 열정이 이번 무대에서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
정복근의 압축적이고 시적인 문체의 언어들을 한태숙은 하나의 단아한 서정시로 만들어 낸다.
해방 공간의 여간첩 이야기를 통해 불행했던 역사 속에서 아픈 삶을 살아간 한 여성의 이야기를 가슴 뭉클한 사랑의 이야기로 그려내 객석을 울려주는 것.
세번째로는 개성파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덕혜옹주' 이후 2년만에 정극 무대에 선 윤석화는 매우 정갈한 동작과 몸에 실은 연극 언어로 객석을 사로 잡았다.
이데올로기의 광풍속을 걸어가다가 자신을 침몰시킨 운명적인 사랑을 맞이하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50년대의 김수임을, 오늘 이 시간에 살아있는 인물로 형상화했다.
이강국 역의 한명구는 보다 성숙된 모습을, 시인 모윤숙 역의 차유경은 당대 지식인의 한 전형을, 양계선 역의 한상미는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선보였다. 최일화 최홍일 이용구 성지루도 호연했다.
여기에 당차고 상상력이 풍부한 김효선이 내놓은 원세트 개념의 심플한 무대는 극중 인물들이 살다 간 공간적인 배경을 넉넉하게 표현, 관객들을 그 속으로 끌어 들이는 데 성공했다.
반면, 이 연극은 이미 알려진 김수임의 이야기라기보다 다양한 인물들간의 갈등과 반목,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역사적인 추리 그리고 사랑에 대한 상상력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너무 단순하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6월 8일까지. (02)766－3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