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중소기업사장등] 호(號) 갖기 유행
기사입력 1997년 05월 02일 14시 43분
호(號)갖기가 유행하고 있다.
한보청문회, 대권후보경쟁 등과 관련, 정치인이나 기업가 등 `유명인사들'의 호가 세간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서울 시내 역리원에 따르면 그동안 호는 정치인이나 재벌총수 등의 몫이었으나 최근들어서는 공직에 있거나 학자, 중소업체 사장 사이에서도 호 작명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 로터리클럽 등 일부 모임에서는 호가 없는 사람은 회원으로 등록할 수 없을 정도.
이같은 현상은 직장인 등 `보통사람'에게까지 이어져 술좌석 등에서는 이름 대신 호를 부르는 신풍속도 등장했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재미로 만드는 게 대부분이지만 최근 한보비리로 인한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나 실망감 등 세태를 반영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윤영도씨(48)는 집안에 연못이 있어 호를 `정암'(井庵)으로 지은 케이스.
조선조 중종때 개혁정치를 주도했던 정암(靜庵) 조광조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한보그룹 총회장의 호가 자신과 한글이 똑같은 정암(正岩)으로 밝혀지면서 개호(改號)를 신중히 고려중이다.
그는 "하필 부패비리의 대부격인 정태수씨의 호와 같을 게 뭐냐"며 "지하에 있는 `진짜 정암'이 이 사실을 안다면 서운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인기(?)있는 호는 끝자리가 산(山)으로 끝나는 이른바 `○산' 시리즈.
YS의 호가 거산(巨山)이고, 한보비리에 연루된 아들 현철씨를 `거산'의 황태자라는 의미의 `소산(小山)'이라 부르는데서 연유한 것.
이 때문에 일부 직장인들은 문민정부의 실정(失政)을 빗대 이름이나 직업, 고향 등에서 앞글자를 따고 끝자리에 산을 붙이는 작명법을 애용하고 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김현식씨(34)는 "요즘 한보비리에 연루되거나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다"며 "동료들끼리 술좌석에서 서로 호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했다.
역술인들에 따르면 이름 앞에 부르는 호는 집으로 치면 울타리나 기둥과 같은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함부로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
백운비역리원은 "음양오행으로 볼 때 사주와 호가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호를 함부로 지으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