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 야구보기]'박찬호 중계' 공영방송의 실수
기사입력 1997년 05월 02일 01시 06분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대통령을 구속 시킨 정부의 대통령 아들이 금전수수 혐의로 곧 구속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던 국회의원들은 검찰만 갔다오면 받은 것으로 밝혀지고 막혔던 체증을 시원하게 뚫어줄줄 알았던 청문회도 `모른다'로 일관해 가슴은 더욱 쓰리다.
`부패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요즘 우리 백성들은 현저하게 활력을 잃고 있다.
온 국민이 알게 모르게 한 방향으로 뛰던 목표도 없어졌고 큰 일이 터져도 긴장감을 갖고 대처하는 노력도 하지 않는것 같다.
얼마전만 해도 비상이 걸린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정부도, 국민적인 캠페인 등으로 목표를 응집시키던 사회단체들의 집중력도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달 30일 공영방송 KBS는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가 경기하는 모습을 중계했다.
한국스포츠 사상 최초로 프로야구 최고봉인 메이저리그에 뛰어들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 시킨 박찬호가 던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풀 죽은 백성들에게 신바람을 심어준다는 의미에서 상당히 좋은 의도였다.
우리의 관심은 중계방송을 하는데 돈이 얼마가 드느냐가 아니었다.
헌칠하고 당당한 박찬호가 불같이 빠른 공으로 육중한 체구의 외국선수들을 삼진으로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갑자기 바뀌는 화면을 보면서 공영방송의 농락에 또다시 배신감을 느꼈다.
정확히 오전 8시40분에 시작한 경기를 10시부터 중계하면서 녹화방송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박찬호에 대한 중계방송 예고를 하면서도 녹화방송이라고 하지 않았다.
생중계라는 말도 없었다.
때문에 KBS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KBS는 지난달 6일과 10일 피츠버그전과 뉴욕 메츠전을 실황중계를 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번 경기도 당연히 생중계인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공영방송이 견지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믿었던 공영방송에서 중계를 한지 1시간30분후 갑자기 화면이 빨리 돌아가더니 8회말 5－2로 현지 경기시간과 맞춰졌다.
어안이 벙벙했던 것은 물론이다.
아나운서도 언제까지는 녹화방송이었고 언제부터 생방송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짚어주지 않았다.
마치 한보 청문회 증인들이 했던 것처럼 어물어물 넘어갔다.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시청자들을 정보 사각지대로 몰아 넣는 행위를 공영방송이 했던 것이다.
만일 KBS가 중계방송을 시작한 오전 10시부터 리얼타임에 맞추고 지나간 이닝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방송을 했다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적어도 시청자들은 속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OB 박철순의 은퇴식이 있었던 지난달 29일 잠실을 찾은 팬들도 상당히 허탈해 했다.
OB는 이미 6개월전 공식 발표를 통해 박철순이 잠실 은퇴경기에서 마운드에 오를 것이라고 홍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철순은 1이닝도 1타자도 상대하지 않았다.
공식 발표한 OB가 박철순의 1군 엔트리 등록을 하지 않아 뛸수도 없었을뿐만 아니라 본인도 목 통증으로 던질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보 청문회에 실망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속고, 공영방송에 농락을 당하고, 야구단은 약속을 파기하고, 이래저래 백성들만 우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