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전란 (1)

기사입력 1997년 04월 29일 17시 26분


배는 이층 갑판의 쌍돛 범선으로 폭이 이십척에 길이가 칠십척인 대해(大海)용 상선이었다.

교정도감 소속의 배로 교위 배중손이 열두명의 수군을 지휘하며 배를 끌었는데 쾌선(快船)이다.

동남풍을 받은 배는 돛을 가득 부풀리며 파도를 가르고 나아갔다.

배중손은 이십대 중반의 다부지게 생긴 사내였다.

본래 우별초에 속해 있다가 전라도에서 무역선을 끌었다는것을 인정받고 상선의 지휘자가 되었다.

상선으로 만들어 졌지만 실제로는 군선(軍船)이다.

선수와 좌우측현에 불화살을 날릴수있는 대궁(大弓)이 장착되어 있었고 군사 사십명을 싣고 두달을 바다위에 떠 있는다고 했다.

이층 갑판위에 서 있는 윤의충에게 배중손이 다가왔다. 배는 좌측으로 내륙을 낀채 남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방호사 어른, 저녁 무렵이면 비바람에 파도가 셀것 같소이다. 유시경에 내륙에 배를 대야 할것 같소이다."

아직 오시무렵으로 한낮이다. 윤의충이 머리를 들고는 하늘을 보았다.

"구름한점 보이지 않는데 어찌 그리 아느냐?"

"바람이 누웠고 습기가 있소이다."

배중손이 손을 들어 수평선을 가리켰다. 바다 끝은 남송 제국이다.

"수평선이 흐리지 않소이까?"

"난 안보인다."

"곧 수평선에 흰 선이 보일것입니다. 강풍이 비를 몰고 올것이오."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의 예견이 맞지 않더라도 자신있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아래쪽 선창에서 군사들이 떠들썩했다. 구광도 그속에 끼어있는 모양이었다.

"방호사 어른, 소직은 방호사 어른의 명성을 들었소이다."

배중손이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번 광주목사의 세곡을 싣고 오던 수군들 한테서 들었소이다."

"허어. 이제 곧 용모파기가 강화섬에 나붙게 되었다."

"진주목의 방호사로 가신다니 소직도 배를 버리고 따르고 싶소이다."

"사람은 제각기의 소용이 있느니."

윤의충이 부드러운 얼굴로 머리를 저었다.

"네 항해술을 내륙에서 썩일수는 없다."

"소직은 공을 세우고 싶소이다."

그에게 한걸음 다가선 배중손의 얼굴은 굳다.

"배를 맡은 후로 한번도 싸움다운 싸움을 해본적이 없소이다."

강화섬의 별초군은 작년까지만 해도 김준의 지시에 의하여 가끔씩 내륙출정을 했다.

물론 비밀리에 나가 개경근처에서 몽골군과의 소규모 전투를 벌이고는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수군은 그런 기회가 없다. 몽골군은 아예 배를 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더 세어졌고 터질듯이 돛을 부풀린 배는 날듯이 바다위를 달렸다.

"몇번 왜선을 쫓았지만 소선(小船)인데다 난렵하여 놓쳤소이다."

배중손이 팔을 들어 바다를 가리켰다.

"보옵시오. 망망대해에서 찾는일도 쉽지 않고 쫓는일은 더욱 어렵소이다."

바람이 파도를 부풀려 일으켰고 피부에는 물방울이 맺혔다.

아직 청명한 하늘인데도 배중손의 말처럼 비바람이 들이칠 모양이었다. 배중손이 소리쳐 키를 꺾었다.

선수를 내륙쪽으로 돌리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