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ML메세지] 우울한 조국에 V소식 전하겠다
기사입력 1997년 04월 29일 15시 22분
요즘 한국이 뒤숭숭하니 나 역시 마음이 좋지 않다.
게다가 내가 팀에서 유일한 한국인이니 때로는 고충이 더하다.
팀 동료들은 당연히 한국에 대한 질문들을 나에게 해댄다.
미국애들은 ＴＶ 뉴스나 신문 등에서 한국 소식을 알고는 나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어온다.
그런데 작년부터 계속해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이 온통 우울한 이야기들뿐이라 기분이 안좋다.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된 사건에 대해서 물어볼 때는 얼굴이 뜨거워졌었다.
미국에서도 닉슨 전 대통령이 도청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이 한국 전직 대통령의 구속 사건을 물어오는 배경에는 은근히 한국을 경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기도 한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질문도 단골 메뉴다.
공연히 과장된 것이지 그런 문제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나 역시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공주 집에 전화도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한다.
요즘엔 또 청문회 이야기를 나에게 물어오는 동료들이 있다.
나 역시 정치에 큰 관심은 없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대통령의 아들이 구설수를 일으켜 증언대에 섰다는 내용을 이들이 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한국이 지독한 불경기라는 소식도 참 안타깝다.
빨리 많은 연봉을 받아 나라도 외화를 많이 벌어야겠다는 어린애같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한국인은 예의 바르고, 교육열이 높고, 어른을 존경하고, 근면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나쁜 소식들이 전해질 때마다 참 속이 상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가 더욱 열심히 노력해 야구를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깊어진다.
아무리 다른 나쁜 소식들이 들려와도 내가 뛰어난 투구를 하면 `한국 선수도 야구를 참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즐겁고 기쁜 소식들이 한국에서 많이 전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도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좋은 소식들을 국내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