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고개숙인 농구천재
기사입력 1997년 04월 28일 15시 23분
동료들과 벤치에서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그의 얼굴에 왠지 겸연쩍음이 묻어있었다. 그러나 이내 웃음이 가시면서 표정이 굳어지더니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허 재 나와라, 허 재 나와라…."
기아와 나래의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 벌어진 지난 26일 부산 사직체육관.
3쿼터 초반부터 기아가 30여점을 앞서나가자 농구팬들의 관심은 더이상 승부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들은 허 재(31．기아)를 연호하고 있었다.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된 허 재는 이날 줄곧 벤치만 지키더니 2쿼터 중반쯤 기아가 더블스코어로 앞서나가면서 출전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주전급들이 전부 빠지고 2진들이 코트에 나선 4쿼터, 허 재를 찾는 관중들의 외침은 더욱 커졌다.
분명히 그가 투입될 상황이 아님을 관중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남겼다.
`그가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말이 나올 만큼 국내에선 적수가 없었던 허 재. 그는 지금 추락하고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허 재의 플레이스타일이 프로농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아마시절 화려한 테크닉을 앞세워 절묘한 돌파력을 보여줬던 그도 용병들이 버티고 있는 골밑을 파고들기가 부담스럽다.
따라서 골밑을 돌파하다 동료에게 패스를 내주는 어시스트가 많아져 본의 아니게 정규리그 어시스트 랭킹 4위까지 오르게 됐다.
또 체력이 떨어지는 그로서는 기아의 주요 공격형태인 속공을 따라잡기가 힘에 부칠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소극적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점도 그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키는 요인.
기아가 단순히 `공격농구'에만 치중한다면 아직도 허 재는 `최고의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수비없는 공격'이 `속빈 강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최인선 감독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그를 스타팅멤버에서 제외해 온 것.
이와함께 전문가들은 "몸에 밴 스타기질을 버리고 `백의종군'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허 재는 되살아날수 있을 것"이란 진단을 내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