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PC베팅 삼매경
기사입력 1997년 04월 28일 15시 23분
(주)G해운 전산실의 김모 대리(31)는 요즘 직장 상사로부터 근무태도가 좋아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컴퓨터라면 이가 갈린다는 김씨가 최근들어 종일 눈이 벌게지도록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것.
김씨가 갑자기 `컴퓨터 사랑'에 빠진 것은 ＰＣ통신망을 통해 사무실에서도 증권거래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결국 근무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컴퓨터로 종일 `베팅'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회사들이 이달부터 ＰＣ통신을 이용한 `홈트레이딩'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홈트레이딩이란 증권회사 영업소가 아니더라도 컴퓨터와 전화선만 있으면 어디서든 증권을 사고 팔수 있게 한 제도.
이 제도가 시작된 뒤 직장인들 사이에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일은 제쳐 두고 상사 몰래 `증권투자 삼매경'에 빠진 직장인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
증권업계에 따르면 홈트레이딩을 하고 있는 사람은 현재 10만여명.
이들이 지난 20여일 동안 약 1천억원 어치의 증권을 사고 팔아 전체 매매량(약 10조원)의 1% 정도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대다수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컴퓨터에 능한 직장인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사무실의 개인용 컴퓨터와 회사 전화선을 이용, 많게는 하루에 2∼3시간씩 베팅을 하고 있다.
홈트레이딩을 하고 있는 한의사 문모씨(31)는 "증권이 거래되는 시간대가 진료시간과 거의 비슷한 오전 9시30분∼오후 3시여서 진료 대신 컴퓨터 앞에 앉고 싶은 생각뿐"이라며 "과거 증권투자를 해본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트레이딩은 컴퓨터로 전화를 걸어 증권전산망과 연결시키는 것이므로 사용시간 만큼 전화비를 내야 한다.
회사의 전화비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러나 직장인들은 앞으로 인력낭비와 회사 전화비에는 아랑곳 없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증권투자에 할애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회사들은 거래대금의 1.5% 안팎의 수수료를 받지만 홈트레이딩 고객의 경우 딜러의 조언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래 수수료를 크게 낮춰 받는 방안을 검토중이기 때문.
또 이달초 ＰＣ통신 천리안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비롯, 하이텔 등 경쟁업체들도 내달 중순 홈트레이딩 서비스개설을 목표로 증권회사들과 계약을 하고 있어 `전국의 증권영업소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