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머리를 굴려라 (6)
기사입력 1997년 04월 27일 15시 00분
`사회과학연구소' 개소식과 `비젼 21' 창업기념식은 96년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겹쳐 대단히 즐거운 파티로 열렸고 26일 새벽 1시에 끝이 났다. 자택을 향해 막 출발하였던 이성구가 운전기사에게 소리쳤다.
"잠깐 세워봐."
그리고 차문을 열었다. 장혜정이 숨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차창 안으로 손을 불쑥 내밀었다. 손에 작은 메모지 한장이 쥐어져 있었고 그 종이를 이성구에게 넘겨 주었다.
"뭐죠, 혜정씨?" "나중에 보세요.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려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성구는 실내등을 켜고 메모를 펼쳤다. `뭐라구? 30일.' 꼭 들려달라는 부탁의 메모였다. 그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두번째 도킹의 찬스가 온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사인을 보내더니.' 그러나 어둠속으로 사라진 혜정은 저쪽 구석에 서 있는 벤츠로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비틀거리며 뒷 좌석으로 쓰러지듯 올랐다.
"취한것 같은데 괜찮겠소?" "죄…송해요. …회장님. 저 …좀 데려다 주세요. …취한 거 같아요. 어른들이 그렇게 집중으로 술을 먹여대니 견딜 재간이 있어야죠."
그녀가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어깨에 몸을 기댔다. 눈치에 이골이 난 기사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댁이 어디시죠?" "어머 …죄송해요. 금호동 …끅." "호수 아파트예요."
차회장의 지시는 떨어질 시간도 없었다. 살롱앞 주차장을 출발한 승용차는 금호동 혜정의 아파트를 향해 힘차게 출발한 것이다.
이성구 상무가 왔을때 보다는 한결 지적(知的)인 분위기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책이 쌓여져 있고, 서류가 있고, 그리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가 있을 것이다. 차회장의 취향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융숭한 대접을 받고 부끄러워하며 하룻밤 몸을 허락할 것이다. 차회장이 돌아가면 역시 그가 다녀간 날짜와 시간, 그리고 대화내용이 메모될 것이며,
그런 것들은 후에 필요할 때마다 고개를 내밀며 차회장을 압박하거나 그가 서슴없이 지원하면 용도폐기되어 버려질 것이다. 어찌됐든 거물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 대단히 스릴있으며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뜬 허원행은 질겁을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신한국당 의원들이 새벽 의사당에 모여 그동안 계속 줄다리기하던 `안기부법' `노동법'을 통과시켰다는 보도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위 `날치기 통과'를 끝내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날치기?'허원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