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나이트] 명퇴자의 일요일
기사입력 1997년 04월 25일 15시 25분
명퇴자 이야기 두 번째.
명퇴자들의 하루하루가 처음부터 괴롭고 고독한 것은 아니다.
우선 명퇴라는 이름부터가 찬란하다. 후진들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해 직장에서 명예롭게 그것도 자기 발로 걸어 나온 일이 뭐 그리 수치스러우랴.
명퇴자들에게는 퇴직금 이외의 적잖은 격려금이 주어진다고 들었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해외여행을 즐기며 조용히 다음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일한 뒤의 휴식은 본인에게 얼마나 달콤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생선은 사흘이면 냄새가 난다고 명퇴도 삼주정도면 물이 가고 만다.
우선 패기 넘치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안절부절 못하고 망설이기를 잘한다.
그의 행동과 말에서는 할까말까가 붙게 된다.
아침에 나갈까 말까.
이력서를 낼까 말까.
자장면 이상의 점심을 먹을까 말까.
담배를 살까 말까.
단골 술집에 들를까 말까.
이렇게 여러 일들이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나중에는 자신이 누굴까 하는 그런 의문까지도 갖는다.
이 남편을 보시라.
벌써 석달 이상을 주택관리사(명퇴 이후의 백수생활자)로 있는 남편이 어느 일요일 아침에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가정관리사로 좌천된 그를 대신하여 일을 나가고 있는 중이다.
"여보, 나 명퇴자 맞아?"
아내는 약간 한심하기도 했지만 남편이 불쌍해 따뜻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요. 맞아요. 그러나 용기를 잃을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남편이 재차 묻는다.
"여보, 나 진짜 명퇴자 맞아?"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아내는 짜증이 난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모처럼 휴일이니 나 좀 쉬게 내버려 둬요. 일이 너무 피곤해요."
그러나 남편의 멋쩍어 하며 하는 말이.
"이상하다. 그러데 왜 일요일만 되면 아직도 내 가슴은 이렇게 뛰는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