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의야구세상] 밤거리의 핫코너'시티비전'중계
기사입력 1997년 04월 23일 14시 37분
도시의 전광판은 내게 즐거움을 준다.
더구나 밤에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전광판을 통해 활기와 짜릿한 매력을 주는 듯 해서다.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전광판 가득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 프로포즈에 성공하는 젊은이처럼 요즘 도시 큰 건물의 전광판은 내게 청혼을 한다.
깊은 밤, 밤의 어둠이 운전을 매끄럽게 할 때 어둠 속에 밝고 선명하게 비추는 야구 밤경기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이터'라는 이상한 조어까지 만든 일본인들은 야구 시즌이면 밤경기에 열광한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다.
밤의 어둠을 환히 비추며 휘황한 인공 조명 아래 야구경기를 보는 일은 일상의 일탈과도 같다.
마치 소풍을 가거나 파티에 간 듯한 짜릿한 흥분이 갈증 후의 첫번째 차디찬 맥주 한잔처럼 내 목을 타고 내려 온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농담을 한다.
`파티에 도시락을 싸갖고 가지 않듯 나이터 경기만큼은 마누라 아닌 `애인'과 같이 가라고….'
밤에 열리는 야구경기가 중계되는 전광판을 보면서 `별들의 전쟁'을 떠올린다.
밤이 주는 흥분과 열기 속에서 관객들에게 군림하는 저 별들, 그들의 강인한 어깨, 재빠른 발, 승리의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그 싱싱한 젊음들, 함께 열광하고 기성을 지르며 현실을 잊어버리고 싶다.
이 밤에 야구장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갈 수 없는 사람들, 대부분 일상에 매여 시간을 결박당한 사람들은 밤 경기가 있는 날은 전광판에 모여든다.
손에는 시원한 캔 맥주를 들고 목을 단단하게 여민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바라본다.
야구만이 줄수 있는 온갖 변수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절묘한 승패의 교차에 함께 웃고 소리 지른다.
환하게 불을 밝힌 눈부실 정도로 선명한 전광판 앞에서 그들은 야구와 인생과 일을 경기한다.
시범경기가 아니라 이제 직업인으로서 프로의 세계에 한 가운데 있는 그들.
한밤중에 지켜보는 프로야구는 넥타이 부대의 삶을 전광판에 비추고 있다.
머리좋은 이들의 게임, 오로지 승자만이 살아남는 게임,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게임, 냉엄한 현실을 열성과 외침을 통해 즐기는 것이 바로 프로야구다.
이 도시의 한 복판에서 `애인'도 없이 익명성 속에서 전광판을 통해 프로야구를 지켜보는 불쌍한（?） 남자들, 혹은 달리던 차를 잠시 멈추고 휘황한 전광판을 바라보면서 저 근사한 야구선수와 데이트하면 재미있을 텐데 하는 바람끼 많은（?） 여자들.
전광판에 비친 프로야구는 탈출을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직접 야구장에 가 밤경기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즐기는 전광판의 밤 경기.
때로는 더 짜릿하고 근사하다고, 마치 하늘을 나는 한마리 새보다도 때로는 인간이 만든 콩코드 비행기가 더욱 아름답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