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이기형 신혼첫날밤
기사입력 1997년 04월 22일 14시 58분
시인 노천명은 사슴을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고 했지만 얼굴이 길어 말（馬）로 통하는 축구 국가대표 이기형（24．삼성）은 요즘 착잡하고 서글프다.
`얼굴이 길어서'가 아니라 지난 20일 백년가약을 맺은 동갑내기 신부（김미라）에게 변변하게 신랑 노릇을 하지 못해서다.
지난 19일 울산에서 현대와 97아디다스컵 폐막경기를 치른 뒤 서울로 올라온 이기형은 20일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이튿날 아침 한－중 정기전（23일）을 위해 북경으로 떠나야 했던 것.
이같은 바쁜 일정 때문에 이기형은 신혼여행은 고사하고 신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볼 여유조차 없다.
오죽하면 `축구공이 신부 얼굴로 보인다'고 했을까.
간호사 출신인 신부는 "축구선수의 아내로서 희생을 각오하고 있다"고 위로했지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은 마찬가지다.
5년간 연애를 해왔지만 이제는 완전한 `나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신부에게 멋진 신혼 첫날을 선사할 수 있을까.' 이기형의 이런 고민에 소속팀인 수원 삼성이 발벗고 나섰다.
삼성은 20일이 일요일이라 하늘의 별따기 같은 서울 신라호텔에 47만원짜리 허니문룸을 예약해주고 장미 스무네송이가 든 꽃다발과 샴페인까지 선사했다.
꽃다발에는 삼성전자 문병대 대표이사（부사장）의 친필 축전도 끼어있었다.
대학친구들과 고려대 근처에서 피로연을 끝내고 호텔에 들어선 시각이 20일 오후 9시. 대표팀 소집을 위해 호텔을 나서야 하는 21일 오전 7시까지는 불과 10시간의 여유뿐이다.
이날밤 이기형－김미라 신혼부부의 신라호텔 허니문룸은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