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그들만의 리그 (9)
기사입력 1997년 04월 17일 14시 46분
곰보살은 쾌재를 불렀다. 아침운동 때는 밤새 좁은 아파트에서 지낸 곰들이 기지개를 켜며 활기찬 활동을 하는 게 보통인데 맘모스가 쭈그려 앉아있다면 뭔가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다. 밤새도록 곰 사파리의 왕이 되기 위해 앓듯이 고민했던 곰보살은 순간 기습을 결정했다. 물론 자신도 전날 혈투에서 입은 부상이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더 아프다면 공격 찬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곰보살은 뒷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성큼성큼 걸었다. 곰보살이 맘모스에게 한걸음씩 다가가자 맘모스 곁에 있던 본토파 졸개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곰보살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던 것이다. 맘모스는 곰보살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이제 한방만 날리면 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뜻밖의 훼방꾼이 나타났다. 본토파 2인자 곰돌이었다. 곰돌은 머리는 나쁘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맘모스에 이은 실력자로 통했다. 곰보살은 하필 이 순간 곰돌이 나타난 게 꺼림칙했지만 기습 결심을 한 터여서 멈출 수 없었다. 곰돌을 지나쳐 맘모스 앞에 서려는 순간 곰돌이 길을 막고 나섰다. `산 너머 산'이었지만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었다. 곰보살은 곰돌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곰돌은 뜻밖에 약했다. 곰돌이 고목 쓰러지듯 넘어지자 곰보살이 바로 덮쳐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곰돌도 그리 간단한 상대는 아니었다. 자신을 덮친 곰보살의 배를 뒷발로 힘껏 걷어찼다. 발 공격에 곰보살이 나가떨어졌다. 곰돌은 일어나자마자 한바탕 큰소리를 내며 성난 곰 특유의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아픈 듯이 앉아있던 맘모스가 일어나 곰보살을 덮쳤다. 간밤에 아파트에서 모의한 함정이었다. 벌렁 나자빠진 곰보살은 배를 하늘로 향하고 있어 온몸이 무방비 상태로 드러나있었다. 맘모스가 곰보살의 앞다리 안쪽 살을 무는 순간 곰돌도 목덜미를 물었다. 본토파가 전주파를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곰 2마리가 덮치자 곰보살은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