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 폴링다운-이유있는 반란
기사입력 1997년 04월 16일 14시 24분
찌는 듯한 여름날, 꽉 막힌 도로에서 에어컨마저 고장난 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면.
웬만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울화가 치밀어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 되지 않을까.
작열하는 태양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따로 없다.
`폴링 다운'(Falling Down)은 이같은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하루동안 겪게 되는 짜증스런 일상을 블랙코미디 터치로 담아낸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3년전인 94년 한국인을 비하시킨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국내 수입개봉을 두고 논란을 빚었다는 점 때문.
문제가 된 내용은 `폴링 다운'의 주제와 닿아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
영화의 주인공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는 교통체증으로 꼼짝않는 고속도로의 차 안에 갇혀 있다가 차를 내버려둔 채 마을로 내려간다.
그리고 전화를 걸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어가 동전을 바꿔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한다. 바로 이 슈퍼마켓의 주인이 한국인.
자동차를 팽개친 채 비지땀을 흘리며 기껏 마을에 내려왔으나 전화 한 통 마음대로 걸 수 없다는 사실에 디펜스의 분노가 폭발한다.
슈퍼마켓을 때려부수고, 슈퍼마켓 주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기도 한다.
이 장면 때문에 `폴링 다운'은 언론이나 여론으로부터 인종차별을, 특히 한국인을 비하시킨 영화로 알려졌던 것.
그러나 최근 개봉에 앞선 시사회를 통해 `폴링 다운'은 한국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 우월주의를 피력하는 내용의 영화라는 누명을 벗었다.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사랑'과 `존재가치'를 박탈당한 주인공이 왜곡되고 비틀어진 세상에 대해 보내는 분노와 야유의 절규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퇴직 통고를 받고 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혼한 전처의 집으로 가는 길.
짧은 하루동안의 여정에서 디펜스는 도시의 무관심과 냉혹한 현실에 수없이 직면한다.
라틴계 강도들로부터 습격을 받기도 하고, 보잘 것 없는 햄버거를 뻔뻔스럽게 파는 패스트푸드점 등이 디펜스의 분노를 촉발시킨다.
결국 평범했던 디펜스는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사회의 냉대와 열등감 뿐임을 자학하면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일탈을 거듭하며 도시를 광란에 빠트리고 만다.
하지만 디펜스를 추적하는 경찰관 프렌더게스트(로버트 듀발)의 시각으로 디펜스의 일탈된 행동은 관객의 연민을 자아낼 만큼 공감대를 형성한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힘있는 연출이 시종일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고, 끝내 비극을 택하는 디펜스의 캐릭터를 극명하게 표출해낸 마이클 더글러스의 열연에서도 명배우의 관록이 느껴진다. (19일 명보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