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정치음모 (8)
기사입력 1997년 04월 16일 14시 13분
제일무역 차회장은 허원행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협상장소를 `M'으로 정한 것과 아들 영일의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력층 비호 전화는 허원행의 신용에 확인도장을 찍어준 셈이 되었다. 그날부터 차영일의 회사인수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갔다. 은행과 사채시장 빚을 끌어안는 조건이지만 인수작업이 끝나면 즉시 은행에서 20억의 중소기업 창업융자가 주어지게 되어있다. 이 모든 힘은 허원행을 지원하는 장국장의 힘이었으며 그 뒤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권력층의 개입이 있을거라고 믿고 있었다. 테이프는 그렇게 마술을 부렸다. 회사는 달포만에 다시 정상가동 되었으며, 직원들은 용기백배하여 조업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달만에 회사를 인수한 허원행은 직원들 대부분을 그대로 흡수했고, 차회장의 아들 차영일을 명예회장으로, 그리고 자신이 실질적인 사장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그것은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 왠지 한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 수서사건 이후 재기에 성공하여 30대 그룹에 성큼 뛰어오르기는 했지만 사채시장에도 그가 제 2금융권의 돈을 천문학적으로 쓰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어찌됐든 한보그룹과의 거래는 불안하다. 다른 방법을 모색하자." 허원행은 다시 장국장을 만나 좋은 조건으로 되팔 계획을 설명했다. 불황기라고 하지만 허원행 회사에는 특별히 배려한 한보다. 그러니 내놓기만 하면 임자는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번 혜택으로 허원행은 장국장과 영원히 결별하리라 작정했다. 장국장도 허원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구워 삶았는지 대륙그룹에서 재인수하기로 했다. 엄청난 액수로 계약되어 허원행은 단번에 100억 가까운 돈을 움켜쥐게 되었다. 거래를 끝낸후 장국장과 허원행이 마주 앉았다. "우리는 당신을 도울만큼 도왔소. 이제 테이프를 주시오. 당신이 소지한…그 복제본 말입니다." 문제는 이 사내가 협박용으로 남겨둔 복제판이다. "그건 묻지 않기로 했잖아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복제판 때문이오." "염려 마시라니까요. 나도 목숨은 지켜야 할거 아닙니까. 죽어도 다른 곳으로 유출시키지는 않을테니 걱정 마시오." "좋소. 그럼 이제 우리 관계는 이것으로 끝을 냅시다. 다시는 날 찾아오지 말아요. 알았죠." 단숨에 100억 가까운 재산을 움켜쥐게 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이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 "좋습니다. 하지만 정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협상은 그렇게 끝났고, 허원행은 이들과 인연을 끊었다. 이 돈을 밑천으로 정계와 재계에 투신하여 대야망을 이룩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