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그들만의 리그 (8)
기사입력 1997년 04월 16일 14시 12분
퇴근한 뒤 아파트에 돌아간 맘모스와 곰보살은 깊은 생각에 젖었다. 나름대로 싸움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온 맘모스와 곰보살은 태어나서 처음 맞은 강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루만 보고 피할 수 있는 적도 아니고, 어차피 사파리가 개장한 이상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처지였다. `그렇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여기서 지면 평생 홀아비로 살아야 한다….' 맘모스는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난 창문을 두드렸다. 한참 잠에 빠졌던 곰돌이 일어나 다가왔다. 맘모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이야기했고, 곰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편 전주에서 올라와 중앙무대를 제패하려다 뜻밖의 강적을 만난 곰보살은 맘모스보다 더 막연했다. 옆에 누운 애첩 보살은 처음 보는 좋은 환경에 마음껏 뛰노느라 지쳤는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보살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줄 알고 살아왔는데 사파리에 나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 왕만 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수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맘모스에게 진다면 게도 구럭도 다 잃고 만다.' 맘모스와 곰보살을 더욱 초조하게 한 것은 불과 한 달 뒤면 암컷들의 발정기가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수곰들은 이미 암곰의 시선을 끌기 위해 목에 힘을 잔뜩 주고, 깁스를 한 것처럼 뻗뻗하게 뒷다리를 편 채 걷기 시작했다. 일년에 한번 오는 `사랑의 계절'을 맞아 그동안 참아온 성욕을 분출시키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왕이 되어 떳떳하게 데이트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왕에게 간택받지 못한 암곰과 은밀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폼이라도 좋아야 했다. 그러나 맘모스와 곰보살은 왕이 남긴 찌꺼기가 목표가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였다. 날이 밝았다. 곰보살은 부스스한 눈으로 간이방사장에 나갔다. 간이방사장에는 이미 대부분의 곰들이 나와 출근준비를 하며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곰보살은 본능적으로 맘모스를 찾았다. 맘모스는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곰보살은 쾌재를 불렀다. `어제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은 게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