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설가 이균영 유작집 출간
기사입력 1997년 04월 16일 14시 11분
우리 사회와 삶의 어두운 기억을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던 아름다운 소설가 이균영씨. 지난해 1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씨의 유고 중편소설집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민음사 간)가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값싼 감각과 건강성을 잃은 글쓰기가 유행하고 있는 요즘, 이씨의 소설은 단아한 문체와 건강한 문제의식으로 소설쓰기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 유고집에는 계간 `세계의 문학' 97년 봄호에 소개됐던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를 비롯해 `빙곡' `자유의 먼길'등 세편의 중편이 실려있다. 이들 작품들은 이념보다도, 집단보다도, 달콤한 연애감정보다도 따뜻한 인간애가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은 일관성 있게 그려낸다. 한 중년남자의 무의식세계 저편에 자리잡은 전쟁의 상처를 통해 이산가족의 비극성을 드러낸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서 보여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선이 이 작품들에도 그대로 배어있다. 표제작 `나뭇잎들은…'에서는 출세를 위해 끊임없이 배신행위를 하는 첫사랑 옥자와 남편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한평생을 바치는 아내 사이에서 일생동안 갈등하며 살아간 노기관사의 삶을 조명했다. `자유의 먼길'에서는 한 대학의 전임강사 채용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교수사회의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또 미완의 유작 `빙곡'에서는 해방공간의 와중에서 좌우대립을 지양하고 휴머니즘에 기반한 미래의 조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한 인물의 부침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운명을 사실의 장인 역사를 통해, 객관주의적인 역사 기술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문학을 통해 동시에 추구했던 이씨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씨는 전남 광양 출신으로 사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 84년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 화제를 모았다. 작품집으로 `바람의 도시' `멀리 있는 빛', 장편소설로 `노자와 장자의 나라' `떠도는 것들의 영혼'등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