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암투 (20)
기사입력 1997년 04월 16일 13시 57분
천세루 주인 송백이 데려온 여자들은 고려인 뿐만아니라 여진족과 거란족도 섞여 있었다.
모두 이십세 전후의 미인들이었는데 박황의 시선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모두 아홉명이요."
송백이 밀실의 벽에 붙어선 여자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제각기 특징이 있소이다. 저년은 방중술이 뛰어났고 저년은 몸매가 좋소. 또 저것은 가무에 능하오."
"이거, 고를수가 없군."
박황이 옆에선 서도명을 바라보았다. 오늘밤 기대원의 침소로 보낼 여자를 찾는것이다.
송백은 죽은 도태일과 함께 여자 장사를 했는데 특별한 물건은 천세루에서 굴린다.
그러나 값이 엄청나게 비쌌으므로 박황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 아니다.
"저기하고 저기."
이윽고 박황이 두 여자를 지목했다.
"잘 단장시켜서 술시까지 보내."
"과연 병마사께선 눈이 높으시오."
송백이 감탄을 했다. 아직 유시 무렵이어서 밖은 해가 남아 있었지만 밀실에서는 주연이 벌어졌다.
박황과 서도명, 송백의 옆에는 제각기 여자들이 앉아 술을 따랐고 술상에는 산해진미가 쌓여 있다.
"이제 기대감이 강화로 가시니 곧 출륙이 되겠소이다."
술잔을 든 송백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땐 소인도 이곳은 동생에게 맡기고 관직이나 하나 얻겠소."
"허, 상서대감 나시겠군."
보료에 등을 기댄 박황이 웃었다.
"돌 깨던 종이 대장군이 되는 세상이야.안될것도 없지."
송합을 치고 금 열근을 포상으로 받은 것이다. 어깨를 편 박황이 술잔을 들었다.
"자. 오늘밤은 실컷 마시자."
기대원은 강화에서 영접사로 온 이재만에게 맡기면 된다. 내일 오전에 떠나는 것만 배웅하면 되는 것이다.
서도명이 이층의 밀실을 나왔을때는 한식경쯤 지난 후였다.
아랫층에서 병사들이 떠들썩한 술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박황이 곡주를 두 동이나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층 끝쪽의 변소로 들어섰다. 남송의 만세루를 흉내냈다는 화려한 변소였다.
향냄새를 맡으며 소변을 보던 그는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머리만을 돌렸다.
"억."
순간 입을 쩍 벌리며 그는 외마디 소리를 냈고 소변은 멈춰졌다.
윤의충이 서 있는 것이다. 숨이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선 윤의충이 입술만을 비틀고 웃었다.
"교위, 그 비싼 금엽주 냄새가 난다."
"낭장어른."
몸을 비튼 서도명이 그를 바라보고 섰다.
"여긴 어인일로."
"네 목을 따겠다."
서도명이 와락 허리에 찬 칼자루를 쥐었으나 그 순간에 목이 떨어지고 있었다.
윤의충은 그의 몸을 변소의 구석에 박아 놓았다. 아랫층의 소음이 다시 울려왔다.
서두르듯 변소를 나온 윤의충은 단숨에 밀실 앞으로 다가갔다. 이미 밀실 앞에 서있던 두명의 병사는 처치한 뒤였으므로 거칠것이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를 보자 박황이 퉁기듯이 일어섰다.
어느새 옆에 내려놓은 검을 움켜쥐고 있다.
"너, 너는 윤의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