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연기에 미쳐 행복한 사내

기사입력 1997년 04월 15일 15시 07분


"인간은 멍에를 메고 태어났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따금씩 유태계 미국작가-솔 벨로우의 '피해자'를 되읽는다. 그 속엔 의미없는 자유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인간군상들이 있다. 죽음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TV 간판스타 (27).
일상을 짓누르는 무게가 더없이 버거워지면 책을 든다.
라즈니시의 '배꼽'도 잊혀지지 않는다.
미니시리즈 '별은 내가슴에'에서 록가수-강민으로 출연중.
록가수 분위기에 걸맞게 이어링을 하고 머리도 길레 내린채 인터뷰에 응했다.
그런데도 수더분하다.
되바라지지 못했다.
낡은 수첩 어딘가에 숨어 있는 전화번호같은 얼굴이다.
시골 길섶이나 강둑,밭두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초다. 일단 사람을 편케한다.
"'별은 내가슴에'는 욕망에 눈먼 인간 본능을 제시한다. 그러나 어둠보다는 빛을 추구한다. 복수와 시기,음모도 교차한다. 강민은 어둡고 폭발적인 성격이다."
강민은 장군의 아들,그러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멍에를떨치지 못한다.
은 극중에서 직접 노래도 부른다.
'멀리서 바라만 보았소/소리내어 울 수 없는 내사랑.' 조장혁의 노래 '그대 떠나가도'를.
. 서울 태생. 정덕초등학교-신창중-경동고-서울예전 연극과 졸업. 고교때부터 배우는 늘상 뇌리에 맴돌았다. 그러나 티를 낼수 없었다. 지레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대학 입학원서를 쓰면서 집에 알렸다.
대학때.이미 연기에 미쳐 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무대에서 살았다. 재학중 총 20여편의 드라마에 출연.
첫 작품은 번역극 '유령'. 이어 '신화 1900'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등. 연기에 눈뜨게 해 준 김효경교수는 두고두고 고맙다.
"아서 밀러의 '시련'은 작품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주인공 프락터역은 내가 소화하기엔 어림도 없었다. 2년후에야 어슴프레 '시련'의 윤곽이 들어왔다."
지금도 그때의 초상화는 아스라한 그리움으로 녹아있다. 가을걷이 후의 들판처럼 처연하기도 하다.
막이 내리면 깡소주에 새우깡, 그리고 라면으로 열정을 달랬다. 새우잠도 차라리 행복이었다.
94년 3월 방위로 제대. 스물네살 석달후 TV 탤런트가 된다. 23기 .
그 2개월 후 수습이 끝난 그 이튿날. '천국의 나그네'에 고정배역을 잡는다.
이어 특집극 '눈먼 새의 노래'에 주역으로 발탁된다.
"맹인 강영우박사의 일대기다. 인간 강영우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애정이 일었다."
이 역은 의 입지를 넓혀줬다. 호평을 얻어낸 것이다.
이어 일요 아침 드라미 '짝'에도 캐스팅된다. 홀어머니 밑네서 자랐지만 구김살 없는 아들-오민수역.
이밖에도 미니시리즈 '호텔'의 웨이터역. 그리고 '전쟁과 사랑'의 김원재 역.
'전쟁과 사랑'은 24부작. 은 17작부터 출연했다. 베트남의 호치민,하노이에서 촬영. 짐통더위에 총과 철모, 그리고 완전군장까지하고 매일 10시간 이상을 버텼다. 미치고 펄쩍 뛸 지경이었다.
더구나 뮤지켤 '베이비 베이비'에도 이내 출연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까지 다랐다. 잠을 줄여 대본을 왹우고 안무연습까지 해야만 했다.
95년 가을. 라디오 생방송 '밤으로의 초대'의 DJ를 맡는다. 그러나 6개월후 스스로 그만 둔다. 본업인 연기에 몰두키 위해.
2년9개월 동안 9편의 TV드라마에 출연. 정신없이 뛰었다. 저절로 말이 샌다. '사는게 뭔지?'
요즘도 하루 서너시간 밖에 못잔다.
.1m77,67kg. 말수가 적다. 남의 입징에 오르내리는 건 딱 질색. 어저다 짬이 나면 그동안 못봤던 영화를 비디오를 통해 본다. 그리고 대학때의 연극쟁이들과 어울려 한잔 술에 취한다.
그러나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으로 간다. 칼이다. 주량은 소주 1병. 야구광이다. 관전평은 프로급. LG1루수 은 단짝 친구. 볼링은 애버리지 200이 넘는다.
CF출연 제의도 적지 않지만 덥석덥석 받지는 않는다. 돈보다는 이미지에 비중을 둔다.
안재욱. 오래남는 영화배우이고 싶다. 만능 엔트테이너이고 싶다.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최고의 가수이자 최고의 영화배우이고자 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뉴욕의 영업용 택시기사 로보트 드니로의 연기는 참 좋았다. 그리고 여죄수 감방을 다룬 조나단 뎀 감독의 영화 '케이지드 히트'도 괜찮은 작품이다."
. 앞만 보고 질주한다. 그러나 문득 돌아보면 그림자 밖에 없다. 고스라쳐 놀란다. 또 다시 '사는게 뭔지?'.그런때는 아지랑이 잠긴 포구의 목로주점에서 막소주라도 실컷 퍼마시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