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규선] 볼펜 한자루면 '치한걱정 안녕-'
기사입력 1997년 04월 15일 14시 58분
볼펜 한자루로 상대방을 혼절시킬 수 있는 사나이. 일반인으로 검도 공인 4단에 오른 남규선씨（35）. 갤러리아백화점 경리팀 대리로 근무하는 남씨는 주말이면 `사범님'으로 변신한다. 검은 도복에 호구로 몸을 감싸고 제자들과 함께 쩌렁쩌렁 기합을 넣어가며 일합（一合）씩 허공을 베어간다. 남산골 샌님같은 곱상한 얼굴의 남씨가 검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입사 2년차인 지난 87년. 7일간 날밤을 새며 급여작업을 하던 중 책상위에 맺힌 코피를 보며 "이러다 과로사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섬뜩한 생각에 당장 도장을 찾았다. 처음 한달은 팔이 아파 전화를 받기 힘들 정도로 고됐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정진한 끝에 6년만에 사범증까지 따냈다. "특히 건망증이 있으신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잠자는 시간만 빼면 늘 정신이 맑게 깨어 있거든요." 남씨는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나이에 비해 어려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검도덕분"이라고 예찬을 늘어놓는다. 남씨의 검도실력은 성폭행 위기에 놓인 여성을 구해내기도 했다. 지난 겨울 퇴근길 으슥한 골목에서 부녀자를 희롱하던 불량배 2명을 들고 있던 우산으로 거꾸러뜨린 것. 이때 상대방은 각목과 깨어진 술병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조심스럽습니다. 자칫 잘못 손이 나갔다가는 `큰 일'이 나거든요." 남씨는 집에서 그 흔한 부부싸움도 하지 않는다. `온몸이 무기'이다보니 늘 `참을 인（忍）'을 곱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씨는 험한 세상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을 심어주려 다섯살난 외동딸에게도 어린이용 목검을 사 줬다. 남씨의 희망은 개인도장을 열고, 심오한 검도의 세계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물론 성공적인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