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정치음모 (7)
기사입력 1997년 04월 15일 14시 44분
다음날 아침. 차성덕 회장은 아침부터 서둘러 일어나 이발소로 사우나탕으로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오후 2시가 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정각 1시. 그는 운전기사를 앞세워 을지로 `M'호텔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머리는 여전히 복잡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자금을 원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비자금이라도 만들어 듬뿍 집어줘야 하는데.' `아니면 허의원을 통해 정계입문의 길을 열어주려는 거 아냐? 어디 사고 지구당이 생긴 거 아닐까.' `그건 아닐테고… 만나보면 알겠지.' 마침내 승용차가 호텔에 도착했다. 그는 거울을 한번 더 보고 로비로 들어섰다. 가슴이 뛰지만 애써 자제하며 에 몸을 실었다. `잘 하면 오늘 운명이 바뀔지 모른다.' 문앞의 벨을 눌렀다. 그리고 잠시 후 굳게 닫혀 있던 객실 문이 열렸다. 건장한 30대 초반쯤의 남자가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불러 주셔서." 문을 열어 주고 소파에 앉는 청년을 바라보며 차회장은 돌부처처럼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앉으십시오. 차회장님." "아… 네." "길게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허실장은 지금 이 시간 두 사람의 대화를 누군가가 도청한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의도적으로 이 VIP 객실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말씀하십시오." "내년에 대선이 있습니다. 각하께서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9룡 중 한 명을 지명하실 건 분명하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옛날처럼 강제로 돈을 달라고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회장께서 국가를 생각하신다면 내년 대선때 움직여 주셔야 할 겁니다. 어느분이 후보가 되든 반드시 다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 마치 권력의 배후 세력이나 되는 것처럼 허풍을 떨어댔다. 하지만 야당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발언이다. 그리고 이런 준재벌급 인사가 집권당 대통령 후보와 연결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판 돌아가는거 잘 아시겠지만 정권교체는 불가능합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각하께서 짐 싸들고 민정당과 합당했겠습니까." "당연하신 말씀이죠." "그렇다고 당장 정치헌금을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회장님. 둘째 아드님 영일씨 때문에 골치 많이 썩이시죠." "네? 원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습니다. 한보그룹에 납품하는 아드님 회사 그거 경영만 잘 하면 괜찮을텐데…. 그게 부도 직전이라… 그거 제게 넘겨 주십시오. 아드님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네? …그게 정말이십니까." "아드님이 문제 일으키면 회장님이 골치 아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