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그들만의 리그 (7)
기사입력 1997년 04월 15일 14시 44분
맘모스와 곰보살의 입에는 이미 시뻘겋게 피가 묻어 있었다. 서로의 어깨와 목덜미를 물어뜯은 전리품이었다. 살점이 한 웅큼씩 떨어져나간 맘모스와 곰보살은 상처에는 아랑곳없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펀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더 이상 상황을 판단할 틈조차 없었다. 패트롤카는 클랙슨을 울리거나 거친 엔진 공회전 소리로 겁을 줄 겨를도 없이 그냥 들이받았다. 가속도가 붙은 상태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길 때문에 겨우 밀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충돌이었다. 몸무게 합계가 600㎏이 훨씬 넘는 곰 2마리를 받자 패트롤카도 뒤뚱거렸다. 패트롤카에 받힌 맘모스와 곰보살은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무척 놀란 표정이 뚜렷했다. `도대체 우리를 떠민 것은 무엇일까?' 사파리 생활을 처음 해 패트롤카의 위력을 모르는 맘모스와 곰보살은 자신들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힘도 센 `무서운 상대'의 출현에 당황했다. 곰들은 싸움을 할 때 뒷발로 선 채로 앞발을 높이 쳐든다. 될 수 있으면 상대에게 크게 보여 겁을 주려는 것이다. 사냥꾼이 노리는 순간이 바로 이 자세를 취했을 때다. 가죽이 가장 얇은 목이나 가슴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맘모스와 곰보살은 자신들이 싸우던 언덕 위를 쳐다봤다. 키는 비슷하지만 옆으로 퍼진 괴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보다는 굉장한 놈이었다. 맘모스와 곰보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개장 첫날부터 벌어진 챔피언 결정전은 이렇게 끝났다. 서열도 대강 판가름났다. 맘모스와 곰보살은 공동 1위가 되고, 시커먼스는 랭킹에 관계없이 탁월한 싸움 실력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86년생인 시커먼스는 맘모스와 곰보살보다 나이가 7살이나 어린 만큼 덩치가 작아서 그렇지 세월이 흘러 어른만 되면 언제라도 왕곰이 될 유망주였다. 맘모스와 곰보살은 패트롤카의 방해로 싸움이 중단된 뒤 서로 피해다녔다.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 깨달은 것이다. 둘은 퇴근 시간 무렵 아파트로 통하는 길목에서 마주쳤으나, 짐짓 못본 체하고 아무런 충돌 없이 퇴근을 서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