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대] 플라모델 만들기 붐
기사입력 1997년 04월 14일 14시 35분
소인국의 세계에 몰입하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
30∼40대 사이에 자동차, 비행기, 탱크 등을 정밀 축소해 수백여 개에 이르는 플라스틱 부품으로 나눈 `플라모델' 만들기가 유행하고 있는 것.
과거 `조립식'으로 불리던 어린이용 장난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형이지만, 실제 전투기나 장갑차의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48대1, 72대1 등으로 정밀 축소했을 뿐만아니라, 조종사 인형의 얼굴 표정은 물론이고, 조종석의 계기판 바늘까지 그대로 재현돼 있다.
특히 30∼40대의 중장년층이 플라모델에 몰입하는 것은 최근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치매 예방에 좋다는 설이 퍼지고 있기 때문.
밀리미터（㎜）단위의 정밀부품을 핀셋으로 집어 맞추다 보면 뇌세포에 자극을 줘 활발한 두뇌의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최대'라는 수식어를 유난히 좋아했던 경제개발의 주역들이 이제는 `작은 게 아름다운' 세계에 빠져드는 것도 하나의 아이러니다.
최근 플라모델을 시작한 대기업체 부장 김창현씨（44）는 "퇴근 후 틈틈이 서재 겸 작업실에서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탱크나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며 "접착제로 탱크에 포탑을 달고, 전투기의 날개 밑에 폭탄을 달다보면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의 걱정이 말끔히 씻겨
머릿속이 맑아진다"고 예찬했다.
`플라모델'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취미삼아 목제범선이나 고급승용차 등 `우아한' 대상을 축소모형으로 만드는 가정주부 신정숙씨（38．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플라모델을 시작하고 나서는 가스밸브를 열어둔 채 외출한다든지, 다리미를 켜 둔 것을 깜빡하는 일이 없어졌다"며 건망증이 사라진 것을 자랑했다.
플라모델을 즐기는 성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반영하듯 `취미가' 등 전문지의 독자 가운데 상당수가 30∼40대 연령층이고, 이른바 `과학사'로 불리는 플라모델 취급상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호회에도 이들 중장년층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서울 광혜병원 신승철 원장은 "폭 넓고 원만한 대인관계 속에서도 이따금씩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몰입하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필요하다. 미세한 부품을 이리저리 꿰맞춰야 하는 플라모델같은 취미는 집중력을 키우고, 특히 활발한 두뇌 활동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노인성 치매'의 예방에도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