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암투 (13)

기사입력 1997년 04월 08일 14시 55분


박교위는 삼십대 초반쯤의 사내로 구레나룻이 짙었다. 검은 피부에 뼈대가 굵어서 힘꼴깨나 쓸것같이 보였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윤의충을 보자 조금 놀란것 같았으나 곧 어깨를 폈다. 막사의 앞이었다.

"낭장어른, 웬일이십니까?"

윤의충이 잠자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서 대여섯명의 병사가 담장을 고치고 있었는데 이쪽을 힐끗거렸다.

늦여름의 한낮이다. 병사들의 잠방이가 땀에 젖어 있었다. 이윽고 윤의충이 박교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며칠전 우부승선께서 동쪽 창고를 열었다고 들었다. 대감의 인허증을 보자."

말소리는 낮았으나 근처 병사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다 들은 것이다.

박교위가 눈을 치켜떴다. 조금도 기가 죽지 않은 모습이다.

"대감의 인허증은 없소이다. 대신 대부인의 인허증을 받았습지요."

"대부인의 인허증으로 창고를 열었단 말이냐?"

"예. 전에도 여러번 그랬소이다. 낭장어른."

그는 이제 어깨를 펴고 턱을 들었다.

"대부인께서 대감께 허락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지금이라도 나는 네 목을 벨수 있다."

그저 잔잔해서 억양이 없는 말소리였지만 다시 주위가 숨소리도 없이 조용해졌다.

박교위는 몸을 굳혔지만 아직 기세가 있다.

"낭장어른, 소직은 아직 영문을 모르고 있소이다."

"…."

"죄가 있다면 밝혀 주옵시오."

"대감의 인허증이 있어야만 창고를 연다."

한걸음 다가선 윤의충이 허리에 찬 칼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넌 창고를 열기전에 나에게 보고를 했어야 옳다. 국고를 네놈 마음대로 열었다."

박교위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낭장어른, 이제까지 우부승선의 행차시에는 그런 예가 없었소이다."

"닥쳐라！"

낮았으나 짧은 그의 호통이 주위를 울렸다.

"대감의 명이다. 들어라."

윤의충의 말소리가 다시 살처럼 쏘아졌다.

"앞으로 대감의 인허증없이 창고를 연다면 경비장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

"내가 직접 벤다. 알았느냐?"

"알았소이다."

"창고를 열기 전에 나에게 보고를 하도록,내가 입회한다."

"예. 낭장어른."

박교위가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심복하는 기색은 아니다. 창고를 나온 윤의충이 도감에 돌아온것은 미시 무렵이다.

그의 막사에는 위사장 한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낭장, 대감께서 부르시오."

그가 앞장을 섰으므로 윤의충은 뒤를 따랐다.

"기대원이 개경에 도착 했다고 하오."

한단이 지나는 말처럼 말했다.

"왕께서는 중랑장 이재만을 영접사로 보내신다고 하오."

중랑장 이재만은 곧 김영과 혼인할 사람이다. 윤의충은 잠자코 그를 따라 사저로 들어섰다.

왕은 기대원의 도착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김준의 세력을 견제 하겠다는 의도가 행동으로 나타내진 것이다.